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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Urantia)서-한국어 듣기(mp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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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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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 유란시아서  보고, 듣고, 읽는 게시물 - 유란시아(Urantia)서-한국어 듣기(mp4)는.
유란시아서 196편과, 
세부목차 4편.
유투브 동영상 소개 4편을 
모두 게시함으로 인하여 본 커뮤니티에 게시물은 전부 완료하였습니다.
어느 누구라도 인생 여정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일생에 꼭 꼭 한번 읽어보고 들어보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땅에 살다 가는 인생, 그 모든 사람들의 삶 그 자체가, 
만유의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안에 있는 참 사랑이며, 소망이며, 기쁨인 것을 알게되는 그런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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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제4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PART IV.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제 195 편  오순절 이후 
195:0.1(2069-2)
오순절 날 베드로 설교의 결과들은, 왕국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그들의 노력들에서, 대부분 사도들의 장래의 정책들을 정하고 그리고 계획들을 결정하는 그러한 것들이었다, 베드로는 그리스도교 교회의 실제적 설립자였으며; 바울은 그리스도교 메시지를 이방인들에게 전파하였고, 그리스인 신자들이 그것을 로마제국 전역에 퍼뜨렸다.




195:0.2(2069-2)

전통에 매이고 사제의 지배를 받는 히브리인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예수의 복음이나 그리스도의 부활과 상승에 대한 베드로와 바울의 선포 (후에 그리스도교가 됨)를 거부하였지만, 로마제국의 그 나머지는 확장되는 그리스도교 교훈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 당시의 서방 문명은 지적이었고 전쟁에 지쳐 있었으며 기존의 모든 종교들과 우주 철학들에 대하여 속속들이 회의적이었다. 서방 세계의 민족들은, 그리스 문화의 수혜자들, 위대한 과거의 존경받는 전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철학, 예술, 문학, 그리고 정치적 진보 분야에서 위대한 성취들의 유산을 기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성취들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혼을 만족시키는 종교를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의 영적 갈망은 만족되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195:0.3(2069-3)

그러한 인간 사회의 무대 위로 예수의 가르침들이, 그리스도교의 메시지에 둘러싸여, 갑자기 밀려왔다. 새로운 삶의 질서가 그렇게 해서 이들 서방 사람들의 간절한 가슴에 제시되었다. 이 상황은 더 오래된 종교적 관습과 세상에 대한 예수의 메시지에 대한 새로운 그리스도교식 해석 사이에 즉각적인 갈등을 의미하였다. 그러한 갈등은 새로운 것이나 옛 것이 결정적으로 승리하거나 또는 어느 정도의 타협으로 끝나야만 한다. 역사는 투쟁이 타협으로 끝났음을 보여준다. 그리스도교는 어느 한 민족이 한 두 세대 동안에 동화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많은 것들을 포옹시키려고 하였다. 그것은 예수가 사람들의 혼에게 제시하였던 것과 같은, 단순한 영적 호소가 아니었다; 그것은 일찍부터 종교의식, 교육, 마술, 의술, 예술, 문학, 법, 정부, 도덕, 성(性)에 관한 규칙, 일부다처제, 그리고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노예제도에 대해서까지 분명한 태도를 고집하였다. 그리스도교는 단순히 하나의 새로운 종교─로마제국 전체와 모든 동방이 기다리고 있던 어떤 것─가 아니라 인간 사회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계층으로 등장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으로서 그것은 당대의 사회적-도덕적 충돌을 신속히 촉진시켰다. 예수가 제시한 그 이상(理想)들은, 그리스 철학에 의해 재해석하고, 그리스도교 안에서 사회화됨에 따라서, 이제 서방 문명의 윤리 도덕, 종교에 구현된 인간 종족의 전통에 대담하게 도전하였다. 




195:0.4(2069-4)

처음에는, 그리스도교는 오직 사회적으로 그리고 경제적으로 보다 낮은 계층의 사람들만 개종시킬 수 있었다. 그러나 2세기가 시작되면서 그리스-로마 문화의 최고점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새로운 질서, 삶의 목적과 실재의 목표에 대한 이 새로운 개념을 향하여 점점 더 돌아서고 있었다. 




195:0.5(2070-1)

어떻게, 그것의 태생의 땅에서는 거의 실패한, 유대에서 기원한 이 새로운 메시지가 그토록 빨리 그리고 효과적으로 로마제국의 최상의 마음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을까? 철학적인 종교들과 신비종파들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승리는 다음과 같은 점에 기인되었다:




195:0.6(2070-2)

1. 조직. 바울은 위대한 조직가였으며 그의 후계자들은 그가 정한 걸음을 유지하였다.




195:0.7(2070-3)

2. 그리스도교가 속속들이 그리스화 되었다. 그리스 철학의 최고뿐 아니라 히브리 신학의 정수(精髓)까지 포옹하였다.




195:0.8(2070-4)

3. 그러나 그 중에서 최고는, 그것은 새롭고도 위대한 이상(理想), 즉 예수의 생명 증여에서의 반향(反響)과 모든 인류에게 주는 그의 구원의 메시지에서의 반영이 포함되었다. 




195:0.9(2070-5)

4.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미트라교와 기꺼이 타협해서, 그 추종자들의 절반 이상이 안디옥 종파로 전향되도록 하였다. 




195:0.10(2070-6)

5. 마찬가지로 그 다음과 그리고 그 후대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도 이교도와 더욱 타협하여, 로마 황제 콘스탄틴마저도 그 새로운 종교에 설득되어졌다. 




195:0.11(2070-7)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이교도의 의례적인 허식을 받아들이고, 한편으로는 이교도들에게 바울 그리스도교의 그리스화된 해석을 받아들이도록 강제했다는 점에서, 그들은 이교도들과 영민한 거래를 했다. 그들은 미트라 종파와 맺었던 것보다는 이교도들과 더 나은 거래를 하였다, 그러나 그러한 초기의 타협에서도 그들은 극심한 부도덕은 물론 페르시아 신비 사상의 비난받을 만한 다른 수많은 관습들을 성공적으로 제거시킴으로써 정복자가 되고도 남았다




195:0.12(2070-8)

현명하였든 또는 현명치 못했든, 이 초기의 그리스도교 지도자들은 예수의 이상들을 자의적으로 양보하고 그리고 더 많은 예수의 관념들을 구하려는 노력했다. 그리고 그들은 뛰어나게 성공했다. 그러나 오류를 범하지 마라! 이렇게 양보된 주(主)의 이상들은 여전히 그의 복음 속에 잠재되어 있으며, 결국에는 그들의 충분한 힘을 세상에서 주장하게 될 것이다.




195:0.13(2070-9)

그리스도교의 이 이교화로 인하여, 옛 계층은 의례적인 본성에서의 많은 작은 승리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들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주도권을 얻었다:




195:0.14(2070-10)

1. 인간의 도덕에서 새롭고도 엄청나게 높아진 음률을 부르짖었다




195:0.15(2070-11)

2. 하느님에 대해서 매우 확대되고 새로운 개념을 세계에 주었다.




195:0.16(2070-12)

3. 불멸의 희망이 인정받는 종교에서의 확신의 한 부분이 되었다.




195:0.17(2070-13)

4. 사람의 굶주린 혼에게 나사렛 예수가 주어졌다.




195:0.18(2070-14)

예수가 가르치셨던 위대한 진리들 대부분이 이러한 초기의 타협 속에서 거의 유실되었지만, 그것들은 아직도 이교화된 그리스도교의 종교, 다시 말해서, 사람의 아들에 대한 일생과 가르침을 지닌 바울파의 해석 안에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이교화 되기 전에 이미, 먼저 속속들이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가 되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인들에게 많은, 너무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이집트에서 온 그리스인이 니케아에서 용감하게 일어나서, 아주 두려움 없이 그의 증여에 대한 참된 진리가 세상에 알려지지 못할 위기에 처했을 이 집회에 도전하였고, 그 회의가 예수의 본성에 대한 개념을 감히 가리우지 못하도록 하였다. 이 그리스인의 이름은 아다나시우스였으며, 이 신자의 논리와 웅변술이 아니었으면, 아리우스의 신조가 승리했었을 것이다.






1. 그리스인들의 영향

195:1.1(2071-1)

그리스도교의 그리스화는 사도 바울이 아덴에 있는 아레오파구스 의회에 출두하여 “미지의 하느님”에 관하여 아덴 사람들에게 이야기했던 의미심장한 그 날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곳, 아크로폴리스의 그늘 아래에서, 이 로마 시민은 그곳에 있는 그리스인들에게, 갈릴리의 유대 땅에서 발생된 새로운 종교에 대해 자신의 해석을 선포하였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그리스 철학에는 예수의 가르침들 중에서 많은 것과 유사한 점이 있었다. 그들은 공통적인 목적─둘 모두 개별존재의 창발에 두는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창발을; 예수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창발을. 그리스인들은 정치적인 자유로 인도하는 이성적인 자유주의를 가르쳤으며; 예수는 종교적 해방으로 인도하는 영적 해방주의를 가르치셨다. 이 두 관념들은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는 하나의 새롭고도 강력한 헌장을 수립하였으며; 사람의 사회적, 정치적, 그리고 영적 해방에 대한 전조(前條)가 되었다.




195:1.2(2071-2)

그리스도교가 실재하게 되고 투쟁 관계에 있는 모든 종교들에 대해서 승리를 거두게 된 두 가지 주요 원인은:




195:1.3(2071-3)

1. 그리스인의 마음은 유대인들이라 해도 새롭고 좋은 관념들은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했다.




195:1.4(2071-4)

2. 바울과 그의 후계자들은 기꺼이, 그러나 약삭빠르고 영리하게 타협하는 자들이었다; 신학을 다루는 날카로운 거래자들이었다.




195:1.5(2071-5)

바울이 아덴에서 일어나서 “그리스도이자 십자가에 못박힌 이”에 대해 설교했을 때, 그리스인들은 영적으로 굶주려있었다; 그들은 묻고 있었고, 관심을 가졌으며, 실제적으로 영적 진리를 찾고 있었다. 처음에 로마인들은 그리스도교와 싸웠다, 반면에 그리스인들은 그것을 포옹하였다, 그리고 그때에는 그리스 문화의 일부분인 것으로 수정된, 이 새로운 종교를 로마인들이 나중에 받아들이도록 실제적으로 압력을 가한 사람이 바로 그리스인들이었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라. 




195:1.6(2071-6)

그리스인들은 아름다움(美)을 숭배하였고, 유대인들은 신성함을 숭배하였다. 그러나 두 민족 모두 진리를 사랑하였다. 수세기 동안 그리스인들은 종교를 제외한 모든 인간 문제들─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그리고 철학적인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고 논의하였다. 종교에 많은 관심을 기울인 그리스인은 거의 없었다; 그들은 자기 자신들의 종교에 대해서도 매우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수세기 동안 유대인들은 그들의 마음을 종교에 헌신하면서, 반면 다른 분야의 생각에는 무관심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종교를 매우 진지하게 여겼으며, 너무 진지하게 여겼다. 예수의 메시지의 내용에서 비추어지고 있듯이, 이 두 민족들의 여러 세기동안의 생각이 결합되어진 산물이 이제 인간 사회의 새로운 계층에, 어느 한도에서는, 인간의 종교적 믿음과 관습의 새로운 계층에 추진력이 되었다.




195:1.7(2071-7)

그리스 문명의 영향은 알렉산더가 그리스의 문명을 근동 지역에 퍼뜨렸을 때 이미 서부 지중해 지방에 침투해 들어갔다. 그리스인들은 작은 도시국가 안에 사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종교와 자신들의 정치로 대단히 잘 행하였다. 그러나 마케도니아 왕이 그리스를 대담하게 하나의 제국으로 확대시키면서, 아드리아 해로부터 인더스 강까지 뻗어 나갔을 때 문제가 시작되었다. 그리스의 예술과 철학은 제국 확대의 과업과 충분하게 동등하였지만, 그리스의 정치 행정이나 종교는 그렇지 못하였다. 그리스의 도시-국가가 제국으로 확대된 이후에, 상당히 지엽적인 그들의 하느님들은 다소 괴상하게 보였다. 오래된 유대 종교의 그리스도교화된 해석본이 그들에게 다가왔을 때, 그리스인들은 진실로 한분 하느님, 보다 위대하고 훌륭한 하느님을 찾고 있었다,




195:1.8(2072-1)

이런 상태로 그리스 제국은 지탱될 수 없었다. 그 문화적 지배는 계속되었지만, 그러나 서방으로부터 제국의 행정을 위한 로마의 정치적 재능이 확보되고, 그리고 동방으로부터 제국의 존엄을 갖춘 한분 하느님의 종교를 얻은 뒤에야, 비로소 오래 견디어냈다.

 

195:1.9(2072-2)

그리스도 이후 첫 세기 동안에, 그리스 문화는 이미 최고 차원에 이르렀다; 그것의 쇠퇴기가 시작되었다; 학문은 발전하고 있었지만 창조적인 재능은 쇠퇴하고 있었다. 바로 이러한 때에, 그리스도교 안에 부분적으로 구현되어 있던, 예수의 관념과 이상이 그리스 문화와 학문의 구출에 일익을 담당하였다.




195:1.10(2072-3)

알렉산더는 그리스 문명의 문화적 선물을 가지고 동방에 진격하였다; 바울은 예수의 복음의 그리스도교 해석본으로 서방을 공략하였다. 그리고 그리스 문화가 보급된 서방 전역의 어느 곳이든지, 그곳에는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가 뿌리를 내렸다.




195:1.11(2072-4)

예수의 메시지에 대한 동방 해석본은, 그의 가르침에 대하여 좀더 진실이 유지되긴 하였지만, 완고한 아브너의 태도를 계속 따랐다. 결코 그리스화된 해석본처럼 진보하지 못하였으며, 결국에는 이슬람 운동 안에서 없어지게 되었다.






2. 로마의 영향

195:2.1(2072-5)

로마인들은 추첨에 의한 정부 대신에 대의(代議) 정부를 채택하면서 그리스 문화를 통째로 이어받았다. 그리고 로마가 모든 서방 세계에 생소한 언어들과 민족들 그리고 심지어는 종교들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용을 가져왔다는 면에서, 이러한 변화는 곧바로 그리스도교를 유리하게 만들었다.




195:2.2(2072-6)

로마에서의 그리스도교인 들에 대한 초기 박해의 대부분은 단지 그들이 불운하게 설교에서 사용한 “왕국”이라는 용어에서 기인되었다. 로마인들은 어떤 그리고 모든 종교들에 대해서 관대하였다 그러나 정치적 경쟁의 냄새가 나는 것에 대해서는 대단히 분개하였다. 그러므로 대부분이 오해로 인하여 기인되었던 이러한 초기의 박해가 끝나게 되자, 종교적 포교활동을 위한 마당이 활짝 열렸다. 로마인은 정치 행정에 관심을 가졌다; 그들은 예술이나 종교에는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둘 모두에 이상스러울 만큼 관대하였다.




195:2.3(2072-7)

동양의 법은 엄격하고 독단적이었고; 그리스의 법은 유동적이고 예술적이었으며; 로마의 법은 위엄이 있고 존경심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로마의 교육은 전대미문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가르쳤다. 초기의 로마인들은 정치적으로 헌신적이고 숭고하게 삶을 바치는 개별존재였다. 그들은 자기들의 이상에 대해 성실하고 열정적이었으며 헌신적이었다. 그러나 이름에 걸 맞는 종교가 없었다. 그들의 그리스인 선생들이 그들에게 바울의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195:2.4(2072-8)

그리고 이 로마인들은 아주 훌륭한 민족이었다. 그들은 자기 스스로를 다스렸기 때문에 서양을 다스릴 수 있었다. 그러한 견줄 데 없는 정직, 헌신 그리고 굳센 자아-통제는 그리스도교가 받아들여지고 성장하는 데에 이상적인 토양이었다.




195:2.5(2072-9)

이들 그리스-로마인들은 정치적으로 국가에 헌신하였었기 때문에, 제도적인 교회에 영적으로 헌신하게 되는 것이 쉬웠다. 로마인들은 교회가 국가에 대한 경쟁자로서 그들이 두려워했을 때에만 교회와 싸웠다. 로마는, 민족의 철학이나 토착 문화가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 문화를 자기 것으로 취하였으며, 그 도덕적인 철학으로 그리스도를 용감하게 받아들였다.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도덕적 문화가 되었지만, 그렇게 도매방식으로 새로운 종교를 포옹한 사람들의 영적 성장 안에서 개별적 체험이 된다는 의미로서는 도저히 로마의 종교가 되었다고 할 수 없었다. 사실 정말로, 많은 개별존재들이 모든 이 국가 종교의 표면 밑으로 파고들어왔고, 그들 혼의 영양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화 되고 이교화된 그리스도교의 잠재된 진리들 속에 들어있는 감추어진 의미들의 진정한 가치들을 발견하였다. 




195:2.6(2073-1)

스토아 철학과 “자연과 양심”에 대한 그들의 억센 호소는, 적어도 지적인 감각에서, 모든 로마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도록 잘 준비를 하였을 뿐이다. 로마인은 본성으로 그리고 훈련으로 법률가였다; 그들은 자연법칙까지도 존경하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자연법칙 안에서 하느님의 율법을 식별해냈다. 키케로와 버질을 낳을 수 있었던 민족은 바울의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를 위하여 무르익었다. 




195:2.7(2073-2)

그리하여 로마화된 이들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과 그리스도교인들 모두에게 그들의 종교를 철학화하고, 그것의 관념들을 합동하고 그것의 이상들을 체계화시키고, 실재하고 있는 생명의 흐름에 종교적 관습들을 적응시키도록 강요하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히브리어 경전이 그리스어로 번역됨으로써, 그리고 나중에 그리스어로 신약 성경이 기록됨으로써 엄청나게 도움이 되었다.




195:2.8(2073-3)

그리스인들은, 유대인들이나 다른 많은 민족들과는 대조적으로, 오랫동안 잠정적으로 불멸, 죽음 이후에 어떤 식으로든 생존되는 것을 믿어왔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예수의 가르침의 핵심이었기 때문에, 그 그리스도교가 그들에게 강력하게 호소하리라는 것은 분명했다.




195:2.9(2073-4)

그리스의 문화적 그리고 로마의 정치적 승리들의 상속은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로 지중해 땅들을 하나의 제국으로 통합시켰다, 그리고 서방 세계를 하나의 하느님을 위하여 준비시켰다. 유대교가 이 하느님을 제공하였지만, 그러나 유대교는 이들 로마화된 그리스인들에게 종교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필로가 그들의 거부감을 완화시키는 것을 좀 도왔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하나의 하느님에 대한 더 좋은 개념을 그들에게 보여주었으며, 그들은 준비된 듯이 그것을 포옹하였다,






3.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195:3.1(2073-5)

로마의 정치적인 통치가 강화된 후, 그리고 그리스도교가 전파된 후에, 그리스도교인 들은 자신들이 한분 하느님, 위대한 종교 개념을 가졌지만, 제국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로마인들은 그들에게 위대한 제국은 있지만, 제국 경배와 영적 통합에 합당한 종교적 개념으로써 섬길 수 있는 하느님이 없음을 발견하였다. 그리스도교인 들은 제국을 받아들였고; 제국은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로마는 정치적 통치의 합일을 제공하였고; 그리스는 문화와 학문의 합일을 제공하였으며; 그리스도교는 종교적 생각과 관습의 합일을 제공하였다.




195:3.2(2073-6)

로마는 제국의 보편성으로서 민족주의 전통을 극복하였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서로 다른 종족들과 국가들이 적어도 명목상으로는 하나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195:3.3(2073-7)

그리스도교는 로마에서 스토아 철학자의 활기찬 가르침들과 신비주의 종파들의 구원의 약속들 사이에 큰 논쟁이 벌어졌을 때 인기를 끌었다. 자신들의 언어 속에 “비(非)이기심”이라는 단어가 없는 영적으로 굶주린 민족에게, 그리스도교는 상쾌한 위로와 해방하는 힘으로 다가왔다.




195:3.4(2073-8)

그리스도교에 가장 위대한 힘을 준 것은 그 신자들이 봉사의 삶을 살아갔던 길과 그리고 더욱이 격렬한 박해의 초기에 신앙을 위하여 그들이 죽으며 갔던 길이었다. 




195:3.5(2073-9)

그리스도의 어린이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어린 아이를 원하지 않을 때, 특히 여자 아기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널리 퍼진 관습을 곧 종식시켰다. 




195:3.6(2074-1)

그리스도교 경배의 초기 계획은 대부분이 유대인 회당으로 넘겨졌으며, 미트라신 경배 의식에 의해 수정되었다; 나중에, 많은 이교도의 허식이 더해졌다. 초기 그리스도교 교회의 근간은 유대교로 개종한 그리스도교화된 그리스인들로 구성되었다.




195:3.7(2074-2)

그리스도 이후 2세기는 세계의 전체 역사 중에서 좋은 종교가 서방 세계에서 발전할 수 있는 가장 적합한 시기였다. 1<f>세기 동안 그리스도교는 투쟁과 타협으로 뿌리를 내리고 급속히 퍼져나갈 준비를 스스로 하였었다. 그리스도교는 제국을 받아들였다; 제국은 나중에 그리스도교를 수용하였다. 이것은 새로운 종교의 전파를 위하여 위대한 시기였다. 종교적인 해방이 있었고; 여행이 보편화되었으며 생각은 족쇄가 채워지지 않았다.</f>

<f></f>


195:3.8(2074-3)

이미 시작된 도덕적 타락을 막거나 또는 이미 확정되고 확장되고 있는 인종 퇴보를 보상하기에 그리스화된 그리스도교를 만족스럽게 받아들이는 영적 자극이 로마에 너무 늦게 임하였다. 이 새로운 종교는 제국화된 로마를 위한 문화적 필수품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보다 큰 의미에서 영적 구원의 수단이 되지 못한 것은 매우 불행한 일이다. 




195:3.9(2074-4)

아무리 훌륭한 종교라도, 정부의 관련사에서 개별존재의 참여 부족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로부터, 과도한 온정주의, 과중한 세금과 극심한 징수 폐해, 금을 고갈시키는 레반트족과의 불균형한 거래, 오락의 광기, 로마인들의 규범화, 여성의 쇠퇴, 노예와 민족의 타락, 육체적인 전염병, 그리고 거의 영적 불모지에 이르도록 제도화된 국가 교회로부터, 위대한 제국을 구할 수는 없었다. 




195:3.10(2074-5)

그렇지만, 알렉산드리아의 상황은 그렇게까지 나쁘지는 않았다. 초기의 학교들은 손상되지 않은 많은 예수의 가르침들을 지켜 나갔다. 판타에누스는 클레멘트를 가르친 후에 인도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로 나다니엘을 따라 갔다. 그리스도교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예수의 이상들 중 일부분이 희생된 반면에, 공평하게 말해서, 2세기말 경에. 실제적으로 그리스-로마 세계의 모든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들은 그리스도교인이 되었다는 것은 기록되어야 한다. 승리는 완성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었다. 




195:3.11(2074-6)

그리고 로마제국이 나중에는 몰락하였지만 그리스도교가 생존을 보장받기에 충분할 만큼, 그 제국은 오랫동안 유지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만일 받아들여진 것이 그리스적 그리스도교 대신에 왕국 복음이었다면 로마와 전 세계에 어떤 일이 일어났을 지를 종종 추측해보곤 한다.






4. 유럽의 암흑기

195:4.1(2074-7)

사회의 부속물이 되고 정치와 동맹자가 된 교회는 필연적으로 소위 유럽의 “암흑기”라고 불리는 지적 그리고 영적 쇠퇴를 함께 나눌 처지에 놓여졌다, 이 기간 동안, 종교는 점점 더 수도원과 같이 은둔적이 되고, 금욕적이고 법제화 되었다. 영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교는 동면(冬眠)하고 있었다. 이 기간에 두루, 이러한 무기력하고 세속화된 종교에 발맞추어서, 신비주의의 계속적인 흐름, 비실체성이며 철학적으로는 범신주의와 동족인 것과 거의 접하고 있는, 공상적인 영적 체험이 존재하였다.




195:4.2(2074-8)

이러한 어둡고 절망적인 세기들 동안, 사실상 종교는 다시 중고품이 되었다. 교회의 뒤덮는 권위와 전통 그리고 지시 앞에서 개별존재는 거의 없어졌다. 신성한 재판정에 계신 하느님들에게, 만일 효과적으로 호소하려면. 하느님들 앞에 사람을 대신하여 탄원할 수 있어야 하는, 그러므로, 특별한 영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라성 같은 “성자” 집단의 창조라는 새로운 영적 위협이 나타났다.




195:4.3(2075-1)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한편으로는 다가오는 암흑기를 막아내기에는 무기력하였지만, 충분히 사회화 되고 이교화 되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오랜 기간의 도덕적 어둠과 영적 침체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도록 보다 잘 준비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서방 문명의 긴 밤이 지나는 동안 존속되었으며, 문예부흥이 밝아온 세계에서도 여전히 도덕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암흑기가 지남을 뒤 따라 일어난 그리스도교의 재건은 특별한 지적, 감정적, 그리고 인간 개인성의 영적 유형에 적합한 여러 분파들의 그리스도교적 가르침과 믿음을 초래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리고 많은 이러한 특별한 그리스도교인 집단들, 다시 말해 종교적 계보들이 이 발표를 작성하고 있는 시간에도 아직 잔존(殘存)하고 있다.




195:4.4(2075-2)

그리스도교는 예수의 종교가 예수에 관한 종교로 뜻하지 않게 변환시킨 데서 기원되어지는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더 나아가서 그리스화, 이교화, 세속화, 제도화, 지적 퇴보, 영적 타락, 도덕적 동면, 위협하는 종말, 나중의 회생, 분열, 그리고 비교적 최근의 상대적(相對的) 부흥을 겪은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족보는 선천적 생명력과, 강한 회복력의 자원을 소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바로 이 그리스도교가 서양 사람의 문명세계 속에 현재 존재하고 있으며, 그것은 지배권을 위한 지난날의 싸움으로 특징 지워지는 그러한 저들 파란만장한 위기보다도 훨씬 더 심상치 않은, 실재를 위한 투쟁과 마주하고 있다.




195:4.5(2075-3)

종교는 새로운 시대의 과학적 마음과 물질주의적 성향들의 도전에 지금 직면하고 있다.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 사이의 거대한 투쟁 속에서, 예수의 종교는 결국에는 승리를 거둘 것이다.






5. 현대의 문제점

195:5.1(2075-4)

20세기는 그리스도교와 다른 모든 종교들이 풀어야 할 새로운 문제들을 야기하였다. 문명이 고도화될수록, 사회를 인정시키고 그것의 물질적인 문제들을 쉽게 해결하려는 사람의 모든 노력 속에서 “먼저 하늘의 실체들을 찾는” 의무가 더욱 필요해지고 있다.




195:5.2(2075-5)

진리는 분할되고, 격리되고, 고립되고, 너무 심하게 분석될 때, 혼돈되고 그리고 오도(誤導)되기까지 한다. 살아있는 진리는, 물질적 과학의 사실이나 중재하는 기술의 영감으로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영적 실체로서 그리고 한 덩어리 안에서 포옹될 때에만 진리를 찾는 자들을 바르게 가르친다. 




195:5.3(2075-6)

종교는 사람에게 그의 신성하고 영원한 운명의 계시이다. 종교는 순전히 개인적이고 영적 체험이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사람의 다른 높은 생각의 형태와 언제까지나 구별되어야만 한다:




195:5.4(2075-7)

1. 물질적 실체의 사물들에 대한 사람의 논리적인 태도.




195:5.5(2075-8)

2. 추한 것과 대비된 아름다움에 대한 사람의 심미적인 깊은 이해.




195:5.6(2075-9)

3. 사람의 사회적 책무와 정치적 의무에서의 윤리적 인지(認知).




195:5.7(2075-10)

4. 종교적이거나 그 자체에서 나온 것이 아닌, 인간 도덕성에 대한 사람의 감각.




195:5.8(2075-11)

종교는 신앙과 신뢰 그리고 확신을 불러내는 가치들을 우주에서 발견하도록 예정되었다; 종교는 경배 속에서 절정을 이룬다. 종교는 마음에 의하여 발견된 상대적 가치들과는 대조가 되는 이러한 최극의 가치들을 혼을 위하여 발견한다. 그러한 초인간적 통찰력은 참된 종교적 체험을 통해서만 소유될 수 있다.




195:5.9(2075-12)

영적 실체들에 입각한 도덕이 없이 지속되는 사회체제는 중력 없는 태양계가 할 수 있는 것보다도 더욱 더 유지될 수 없다. 




195:5.10(2076-1)

육신으로 사는 한 번의 짧은 일생에서, 호기심을 채우려 하거나 또는 혼 안에서 솟구치는 모든 잠재된 모험을 만족시키려고 시도하지 말라. 인내하라! 저속하고 비열한 모험에 멋대로 돌진하는 탐닉에 유혹되지 마라. 너의 에너지에 마구를 채우고 너의 정열에 굴레를 씌워라; 진보적인 모험과 감동적인 발견의 끝없는 생애가 장엄하게 전개되는 것을 기다리는 동안 침착하여라. 




195:5.11(2076-2)

사람의 기원에 대한 혼란으로, 그의 영원한 운명을 보는 것을 놓치지 말라. 예수가 어린아이들까지도 사랑하였던 것과, 인간 개인성의 위대한 가치를 언제까지나 분명하게 한 것을 잊지 마라.




195:5.12(2076-3)

너희가 세상을 바라볼 때, 너희가 보는 악의 검은 조각들은 궁극적 선의 하얀 바탕에 대비하여 보인다는 것을 기억해라. 너는 그저 악의 검은 바탕에 대비하여 초라하게 나타나는 선의 흰 조각들만을 보지 마라.




195:5.13(2076-4)

널리 알리고 그리고 전파해야할 그렇게 많은 진리가 있는 때, 왜 사람들은 단지 그것이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고 하여 세상에서 악에 그렇게 많이 유의해야만 하는가? 진리의 영적 가치들의 아름다움(美)은 악의 현상보다 더욱 즐겁고 고양하는 것이다. 




195:5.14(2076-5)

종교에서, 현대 과학이 실험 기법을 추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는 체험의 방법을 옹호하고 따르셨다. 우리는 영적 통찰력의 인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발견한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다운 것에 대한 사랑, 진리의 추구, 의무에 충실함, 그리고 신성한 선에 대한 경배를 통하여 이 혼의 통찰력에 가까이 다가간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가치 중에서, 사랑이 진정한 통찰력으로 인도하는 참된 안내자이다.






6. 물질주의

195:6.1(2076-6)

과학자들은 뜻하지 않게 인류를 물질주의적 공황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쌓아온 도덕의 은행에 생각 없는 외상을 달아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 인간 체험의 은행은 광대한 영적 자원들을 갖고 있다; 그것은 그 위에 매겨져있는 청구들을 대처할 수 있다, 오직 생각 없는 사람들만이 인간 종족의 영적 자산들에 대하여 공황상태가 되어간다. 물질주의적-세속적 공황이 끝나면, 예수의 종교가 파산되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늘의 왕국의 영적 은행은 “그의 이름으로” 그것에 구하였던 모든 사람들에게 신앙과 소망 그리고 도덕적 보증을 지불해줄 것이다.




195:6.2(2076-7)

물질주의와 예수의 가르침 사이에 어떤 명백한 충돌이 있던지 간에, 너희는 앞으로 다가오는 시대에 주(主)의 가르침이 충분히 승리할 것을 안심하고 있어도 된다. 실제로, 참된 종교는 과학과의 어떤 논쟁에도 휘말리게 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물질적인 것에 관여하지 않는다. 종교는 과학에 대해 간단하게 개의하지는 않지만 그러나 깊은 공감을 가지며. 한편으로는 종교 자체는 과학자와 최극으로 관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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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3(2076-8)

지혜에서의 필연적인 해석과 종교적 체험에서의 영적 통찰력이 없는, 단순한 지식 추구는 결국에는 염세주의와 인간 절망으로 인도한다. 작은 지식은 정말로 혼란스럽게 한다.




195:6.4(2076-9)

이것을 쓰고 있는 시기에, 물질주의적 시대의 최악은 지나갔다. 보다 증진된 납득의 날이 이미 밝기 시작하였다. 과학적 세계의 더 높은 차원의 마음을 소유한 사람들은 그들의 철학에서 이제 더 이상 전적으로 물질주의적이 아니다, 그러나 보통사람들은 이전의 가르침들로 인하여 여전히 그 방향으로 기울어져있다. 그러나 이러한 물리적 사실주의 시대는 이 땅에서의 사람의 일생에서 지나가는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다. 현대 과학은 참 종교를─그의 신자들의 삶 속에서 전환된 예수의 가르침들을─다치지 않고 남겨 놓았다. 과학이 이룩한 모든 업적은, 일생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나온 유치한 환상을 깨뜨려버렸다는 것이다.




195:6.5(2077-1)

이 세상에서의 사람의 일생에 관하여 볼 때, 과학은 양적 체험이며, 종교는 질적 체험이다. 과학은 현상을 다룬다; 종교는 기원과 가치 그리고 목표를 다룬다. 원인들을 물리적 현상의 설명으로 돌리는 것은 궁극의 것들에 대한 무지를 고백하는 것이며 그리고 끝에 가서는 과학자들을 처음 위대한 원인자─낙원천국의 우주 아버지─에게로 곧바로 되돌아가도록 인도할 뿐이다.




195:6.6(2077-2)

기적의 시대로부터 기계의 시대로의 격렬한 이동은 사람에게 전적으로 당황되는 것임이 증명되었다. 기계론의 그릇된 철학의 영리함과 교묘함은 바로 그 기계론적 주장이 거짓임을 나타낸다. 물질주의자 마음의 숙명론적인 기민성은 우주가 제멋대로이고 목적이 없는 에너지 현상이라는 그의 주장들이 그릇되고 있다는 것을 언제까지나 증명하고 있다. 




195:6.7(2077-3)

필경 상당한 교육을 받았을 사람들의 기계론적 자연주의와, 거리에 흔히 있는 사람의 생각 없는 세속주의는 둘 모두 오로지 사물에만 관심을 둔다; 그들에게는 모든 진정한 가치, 신성한 규약, 그리고 영적 본성에서의 만족이 알맹이를 이루지 못하며, 신앙과 소망 그리고 영원한 확신이 결여되어 있다. 현대생활에서의 커다란 문제들 중의 하나는 사람이 자신이 너무 바빠서 영적 명상과 종교적인 헌신을 위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195:6.8(2077-4)

물질주의는 사람을 혼이 없는 자동장치로 축소하고, 그리고 그를 낭만도 없고 기계적인 우주의 수학 공식에 무력한 위치를 차지하는 단순한 산술 기호로 이루어 놓는다. 그러나 수학의 이 모든 광대한 우주는 주(主) 수학자가 없이 어디에서 오는가? 과학은 질량의 보존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지만, 종교는 사람들의 혼이 보존되는 것을 입증한다.─그것은 영적 실체들과 영원한 가치들과 함께하는 그들의 체험에 관계되는 것이다. 




195:6.9(2077-5)

오늘날의 물질주의적 사회학자들은 공동체를 조사하고, 곧바로 그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그리고 그가 사람들을 발견했던 그대로 사람을 내버려둔다. 1,900년 전에, 배움이 없는 갈릴리인은, 사람의 내적 체험에 대한 영적 기여로서, 자신의 생명을 주시고 있는 예수를 조사하였고, 그러고 나서는 밖으로 나갔고, 그리고 로마제국 전체를 뒤집어버렸었다.




195:6.10(2077-6)

그렇지만, 종교적 지도자들은 중세 시대의 나팔소리로 현대인들을 영적 전쟁터로 불러내려고 시도하는 큰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종교는 새로운 최첨단의 표어들을 준비해야만 한다. 민주주의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정치적 만병통치약이라도 영적 진보를 대신하지 못할 것이다. 거짓된 종교들은 실체에서의 회피를 내보일지 모르지만, 예수는 그의 복음에서 필사 사람을 영적 진보의 영원한 실체로 들어가는 바로 그 입구로 선도하였다.




195:6.11(2077-7)

마음이 물질로부터 “창발 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한다. 만약에 우주가 단지 기능구조이고 마음이 물질과 구별되지 않았다면, 우리는 관찰된 어떤 현상에 대해서 다른 두개의 해석들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진리(眞)와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에 대한 개념들은 물리학이나 화학의 고유한 속성이 아니다. 기계는 진리, 옳은 것에 대한 굶주림, 그리고 선의 소중함에 대해 알 수도 없고, 전혀 알지도 못한다. 




195:6.12(2077-8)

과학은 물리적일 수 있지만, 진리를 식별하는 과학자의 마음은 동시에 초(超)물질적이다. 물질은 진리를 모른다, 그것은 자비를 사랑하거나 영적 실체들로 즐길 수도 없다. 영적 계몽에 기초되고 인간 체험에 뿌리를 둔 도덕적 신념들은 물리적 관찰들에 기초한 수학적 추론들과 같이 실제적이며 확실한 것이다, 그러나 다른 그리고 더 높은 차원에 근거한다. 




195:6.13(2077-9)

만약에 사람들이 단지 기계들이라면, 물질적인 우주에 대해 거의 동일하게 반응할 것이다. 개별존재성은 비(非)실재로 될 것이며, 개인성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195:6.14(2077-10)

우주들의 우주의 중심에 있는 낙원천국이 절대적 기능구조라는 사실은, 둘째근원이며 중심의 분별불가적인 의지의 현존 안에서, 결정자들이 조화우주에서의 배타적 법이 아니라는 것을 언제까지나 확실하게 만든다. 물질주의가 있다, 그러나 배타적이 아니다; 기능구조가 있다, 그러나 분별불가적이 아니다; 결정론이 있다. 그러나 단독적이 아니다.




195:6.15(2078-1)

물질의 유한 우주는 마음과 영의 병합된 현존이 없다면, 결국에는 균일해지고 그리고 결정론으로 될 것이다. 조화우주 마음의 영향은 물질세계 속이라 해도 끊임없이 자발성을 주입한다. 




195:6.16(2078-2)

실재의 어느 영역에서도 자유나 진취성은 영적 영향과 조화우주-마음 통제의 정도에 직접적으로 비례한다; 그것은 인간 체험 속에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실제성의 정도이다. 그러므로 너희가 일단 하느님을 발견하기 시작하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미 너희를 발견하였다는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인 것이다.




195:6.17
(2078-3)

선(善)과 아름다움(美) 그리고 진리(眞)에 대한 진지한 추구는 하느님께로 인도한다. 그리고 모든 과학적 발견은 우주 속에 자유와 균일성이 둘 모두 실재하고 있음을 실증한다. 발견자는 발견할 자유가 있었다. 발견된 사물은 실제이고 명백히 균일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물로서 알려질 수 없었을 것이다. 






7. 물질주의의 취약성

195:7.1(2078-4)

물질적-마음을 가진 사람이 기능구조적인 기계론 우주와 같은 그렇게 취약한 이론들로 하여금 그에게서 참된 종교에서의 개인적 체험의 광대한 영적 자원들을 빼앗아 가도록 허용하는 것이 얼마니 어리석은 것인가. 사실들은 결코 참된 영적 신앙과 다투지 않는다; 이론들은 그럴 수 있다. 과학은 종교적인 신앙─영적 실체들과 신성한 가치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을 전복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오히려 미신을 타파하는데 전념하는 것이 좋다. 




195:7.2(2078-5)

종교가 사람을 위하여 영적으로 하는: 일생의 지평을 넓히고 그의 개인성을 증대시키는 것을 과학은 그를 위하여 물질적으로 해야 한다. 참된 과학은 참된 종교와 계속되는 대립관계를 가질 수 없다. “과학적인 방법”은 단지 물질적인 모험들과 물리적인 성취들을 재는 지적 척도이다. 그러나 물질적이고 그리고 전적으로 지적으로 되는 것은, 영적 실체들과 종교적 체험들을 평가하는 데 있어서 전혀 쓸모가 없다.




195:7.3(2078-6)

현대 기계론자의 모순은 다음과 같다: 만약 이것이 단지 물질적 우주이고 사람은 단지 기계라면, 그러한 사람은 그 자신을 그런 기계로 인식하는 것이 절대로 불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그와 마찬가지로 그런 기계적-사람은 그러한 물질적 우주의 실재 사실을 결코 의식할 수 없을 것이다. 기계론적 과학의 물질주의적 낙담과 절망이, 바로 자신의 초(超)물질적 통찰력이 물질주의적 우주에 대한 이들 잘못된 판단과 자기-모순의 개념들을 형성한 과학자의 영이-내주된 마음에 대한 사실을 인지하는 것을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195:7.4(2078-7)

영원과 무한의, 진리(眞)의,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에 대한 낙원천국 가치들은 시간과 공간 우주 현상의 사실들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영적 가치들을 감지하고 분간하기 위해서는, 영으로-태어난 필사자 안에 있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다.




195:7.5(2078-8)

영적 진보의 실체와 가치들은 단순히 물질적 마음에서의 영화롭게 꾸민 백일몽-어떤 "정신적인 구체적인 투사 활동"이 아니다. 그러한 일들은 사람의 마음 안에서 살고 있는 하느님 영, 내주하고 있는 조절자의 영적 조짐이다. 그리고 "상대성"을 발견해 내는 어렴풋한 이해와 가벼운 접근으로 하느님의 영원성과 무한성에 대한 너희 개념이 혼란을 겪도록 하지 말라. 그리고 자아-표현의 필요성과 관련되는 너희의 그 모든 간절한 탐구가, 너의 참되고 더욱 나은 자아의 현시, 조절자-표현을 제공하려는 데에 실패하는 그런 오류를 범하지 마라




195:7.6(2079-1)

만약 이것이 단지 물질적 우주이었다면, 물질적 사람은 결코 그러한 배타적으로 물질적인 실재에서의 기계론적 성격 개념에 도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우주의 기계론적 개념 그 자체가 마음의 비물질적 현상이다, 모든 마음은, 비록 그것이 아무리 속속들이 물질적으로 제약을 받고 기계적으로 통제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비물질적 기원에서 비롯한다. 




195:7.7(2079-2)

필사 사람의 부분적으로 진화된 두뇌 정신적 기능구조는 일관성과 지혜가 철저하게 자질부여 받은 것이 아니다. 사람의 자만심은 종종 그의 이성(理性)을 지나치고 그리고 그의 논리를 벗어난다.




195:7.8(2079-3)

대부분의 염세적인 물질주의자의 바로 그 염세주의가, 자체적으로 그리고 저절로, 염세주의자의 우주가 전적으로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충분하게 증명하고 있다. 낙관주의와 염세주의는 둘 모두 사실에서와 마찬가지로 가치에 대한 마음 의식 안에서의 개념 반응들이다. 만일 우주가 정말로 물질주의자들이 그것이 그러하다고 간주하는 것이었다면, 그러면 인간 기계로서의 사람은 바로 그 사실에 대한 모든 의식적(意識的) 자각이 결여되어 있어야만 한다. 영으로 태어난 마음속에 가치들에 대한 개념의 인식이 없다면, 우주 물질주의의 사실과 우주 운행의 기계론적 현상은 절대로 사람에 의해 감지되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의 기계는 다른 기계의 본성이나 가치를 인식할 수 없다.




195:7.9(2079-4)

과학은 오직 물질들과 사실들만을 인지하고 취급하기 때문에 생명과 우주에 대한 기계론적 철학은 과학적이 될 수 없다. 철학은 필연적으로 초(超)과학적이다. 사람은 자연의 물질적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생명은 자연의 물질적 차원들을 초월하는 현상이며, 그 속에서 마음의 통제 속성들과 영의 창조적 본질특성을 나타낸다. 




195:7.10(2079-5)

사람이 기계론자가 되려고 진지하게 노력하는 것은 지적 그리고 도덕적 자살을 저지르려고 사람의 헛된 노력을 기울이는 그러한 비극적인 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다.




195:7.11(2079-6)

만일 우주가 오직 물질적이고 그리고 사람이 단지 기계였다면, 과학자들에게 우주의 기계화에 대한 가정을 세우도록 용기를 붓 돋는 과학이 없었을 것이다. 기계들은 측정하거나 구분하거나 또는 스스로를 평가할 수 없다. 그러한 과학적 작업은 초(超)기계적 지위의 실존개체에 의해서만 수행될 수 있다.




195:7.12(2079-7)

만약에 우주 실체가 단지 하나의 거대한 기계이라면,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인식하고 그리고 그러한 평가의 통찰력을 의식하기 위하여는, 우주 밖에 있어야만 하며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있어야만 한다.




195:7.13(2079-8)

만약에 사람이 단지 기계이라면, 도대체 어떤 기법으로 이 사람이 그는 단지 기계라는 것을 믿게 되었고 또는 안다고 주장하는가? 자신의 자아에 대한 자아-의식적인 평가의 체험은 단순한 기계의 속성이 결코 아니다. 자아-의식적이고 그러면서 스스로 공언하는 기계론자가 기계론에 대한 가능한 최선의 대답이다. 만약에 물질주의가 사실이었다면, 자아-의식적인 기계론자는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어떤 자가 비도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그 전에 먼저 그 자는 도덕적 개인이어야만 한다는 것이 또한 참말이다.




195:7.14(2079-9)

물질주의의 바로 그 주장이 그렇게 독단을 주장하도록 추정하는 마음의 초(超)물질적 의식을 암시한다. 기계론은 나빠질 수는 있지만, 결코 진보할 수는 없다. 기계는 생각하거나, 창조하거나, 꿈을 꾸거나, 포부를 가지거나, 이상화하거나, 진리에 굶주리거나, 또는 올바름에 목마를 수 없다. 그것들은 다른 기계들에게 봉사하고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진보의 목표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려고 분투하는 숭고한 과업을 선택하도록 열정으로 그들의 삶을 자극하지 않는다. 기계들은 결코 지적이거나, 감정적이거나, 심미적이거나, 윤리적이거나, 도덕적이거나, 또는 영적이 아니다.




195:7.15(2079-10)

예술은 사람이 기계론적 존재가 아님을 증명한다, 그러나 그것이 그가 영적으로 불멸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는다. 예술은 필사자의 모론시아이며, 물질적인 것, 사람과 영적인 것, 사람사이에 개재(介在)되는 분야이다. 시(詩)는 물질적 실체에서 영적 가치로 달아나려는 노력이다.




195:7.16(2080-1)

높은 문명에서는, 예술은 과학을 인간화 시키고, 반면에 그것은 진실한 종교─영적이고 영원한 가치들에 대한 통찰─에 의해 영성화된다. 예술은 인간과 실체의 시간-공간적인 평가를 묘사한다. 종교는 조화우주 가치들의 신성한 포옹이다 그리고 영적 상승과 확대로 영원한 진보를 내포한다. 시간의 예술은 영원이 시간의 실체 그림자들로서 반영하는 신성한 원형틀의 영적 표준에 장님이 될 때에만 위험하다, 참된 예술은 일생에서의 물질적 사물의 효력적인 조작이며; 종교는 일생의 물질적인 사실들의 고상한 변환이다, 그리고 그것은 예술에 대한 스스로의 영적 평가 안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195:7.17(2080-2)

자동장치가 자동화주의 철학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추정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며,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그리고 동료 자동장치들의 개념을 형성한다고 추정하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195:7.18(2080-3)

과학자에게 정당한 인정이 고려되지 않으면 물질 우주에 대한 어떤 과학적 해석도 무가치하다. 예술가를 인정해주지 않으면 그 예술의 감상은 참된 것이 아니다. 도덕주의자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도덕에 대한 어떤 평가도 보람이 없다. 철학자를 무시한다면, 철학의 인식이 덕성을 북돋우지 못한다, 그리고 종교는 종교가가 자신의 체험 속에서 그리고 체험을 통하여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를 알려고 노력하는, 바로 종교가의 그 진정한 체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마찬가지로 우주들의 우주는 스스로 이신 이, 그것을 만드셨고 그것을 끊임없이 관리하는 무한 하느님과 동떨어져서는 의의(意義)가 없다.




195:7.19(2080-4)

기계론자들─인본주의자들─은 물질적 흐름에 따라서 떠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이상주의자들과 영성주의자들은 에너지 흐름줄기들의 명백하게 순수한 물질적 진로를 변경하기 위하여 지능과 활력으로 감히 그들의 노를 사용하려 한다. 




195:7.20(2080-5)

과학은 마음에서의 수학으로 살아간다; 음악은 감성에서의 박자를 표현한다. 종교는 무한에서의 더 높고 영원한 선율에 대한 측정의 시간-공간 조화 안에 있는 혼의 율동이다. 종교적 체험은 인간의 일생 속에서 진실로 초(超)수학적인 그 무엇이다. 




195:7.21(2080-6)

언어에서, 알파벳은 물질주의의 기능구조를 대표한다. 반면에 수많은 생각, 커다란 관념, 그리고 고상한 이상의─사랑과 미움에서의, 비겁함과 용기에서의─의미를 표현하는 말들은, 물질적이며 동시에 영적인 법칙에 의해 정의되고, 개인성의 의지가 주장하는 바에 의해 지시를 받으며, 그리고 선천적인 상황에서의 자질에 따라 제한받는 범위 안에서, 마음의 행위들을 묘사한다.




195:7.22(2080-7)

우주는 과학자가 발견하는 그리고 그가 과학이라고 여기게 되는 법칙, 기능구조 그리고 균일성 같은 것이 아니다. 아니 그것은 오히려 우주 현상을 관찰하고 그리고 창조의 물질측면의 그 구조적 위상에 선천적으로 들어있는 수학적 사실을 분류해 내는 그러한 호기심이 강하고, 생각하고, 선택하고, 창조적이고, 병합하고 그리고 분간해 내는 그 과학자들과 같다. 또한 우주는 예술가의 예술과는 다르다, 그러나 오히려 영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노력으로 물질적 사물들의 세계를 초월하려고 애쓰는, 분투하고, 꿈꾸며, 열망하고, 전진하는 예술가와 같다. 




195:7.23(2080-8)

과학이 아니고, 과학자가 에너지와 물질의 진화하고 진보하는 우주의 실체를 감지한다. 예술이 아니고, 예술가가 물질적 실재와 영적 해방 사이에 개재하는 과도기 모론시아 세계의 실재를 실증한다. 종교가 아니고, 종교가가 영원한 진보 속에서 마주치게 되는 영적 실체들과 신성한 가치들의 실재를 증명한다.






8. 세속적인 전체주의

195:8.1(2081-1)

그러나 물질주의와 기계론이 얼마큼 정복되어진 이후라 할지라도, 20세기 세속주의의 지독한 영향은, 수백만의 영문을 모르는 혼의 영적 체험들을 여전히 망치게 할 것이다. 




195:8.2(2081-2)

현대 세속주의는 두 가지의 범세계적인 영향에 의해 육성되고 있다. 세속주의의 아버지는 소위 과학─무신론적 과학이라고 하는 19세기와 20세기의 편협하고도 하느님이 없다는 태도였다. 현대 세속주의의 어머니는 전체주의적 중세(中世) 그리스도교 교회였다. 세속주의는 제도화된 그리스도교 교회에 의한 서방 문명의 거의 완벽한 지배에 대항하여 일어난 불복으로 발단이 되었다.




195:8.3(2081-3)

이 계시의 때에, 유럽인과 아메리카인의 생활에서 유행하는 지적 그리고 철학적 풍조는 단연코 세속적─인본주의적이다. 서방의 사고(思考)는 300년 동안 점차적으로 세속화되어 왔다. 종교는 점점 더 명목상의 영향, 주로 의식적인 행사가 되었다, 서방 문명에서의 자칭 그리스도교인 들의 대부분은 자신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실제로 세속주의자이다.




195:8.4(2081-4)

사람을 시들게 하는 전체주의 교회의 지배의 손아귀에서 서방 사람들의 생각과 생활을 자유롭게 하는 데는, 커다란 힘, 강력한 영향이 필요하였다. 세속주의는 교회의 통제하는 속박을 깨트렸다, 그리고 이제는 다음 차례로 그것이 현대인들의 가슴과 마음 위에 새롭고도 하느님 없는 유형의 지배력을 확립하려고 위협하고 있다. 압제와 독재적인 정치 형태는 과학적 물질주의와 철학적 세속주의의 직접적인 산물이다. 세속주의는 제도화된 교회의 지배로부터 사람을 자유롭게 하자마자, 그것은 사람을 노예처럼 사슬에 묶어 전체주의 국가에 팔았다. 세속주의는 사람을 단지 정치적 그리고 경제적 노예상태의 압제로 팔기 위하여 교회의 노예 신분으로부터 사람을 해방시키고 있다. 




195:8.5(2081-5)

물질주의는 하느님을 부인한다, 세속주의는 단순히 그를 무시한다; 적어도 그것이 초기의 태도였다. 더욱 최근에는, 세속주의는 그것이 한 때 종교의 전체주의적 속박에 저항하였던 그 종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듯이, 더욱 투쟁적인 태도를 취하여 왔다. 20세기의 세속주의는 사람은 하느님이 필요 없다는 것을 확인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조심해라! 인간 사회에서의 하느님이 없는 이 철학은 오직 불안, 증오, 불행, 전쟁, 그리고 범세계적 재난으로 이끌 것이다.




195:8.6(2081-6)

세속주의는 인류에게 결코 평화를 가져올 수 없다. 인간 사회에서 하느님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러나 잘 주목해라! 교회의 전체주의에 대하여 반기를 든 세속자의 은혜로운 수익들을 성급하게 포기하지 마라. 서방 문명은 세속자의 반기의 결과로, 오늘날 많은 해방과 만족을 누리고 있다. 세속주의의 엄청난 오류는 이것 이었다; 종교의 권위에 의해서 생활의 거의 전부가 지배되는 것에 대항하여 반기를 들면서, 그리고 그러한 교회의 횡포로부터 자유를 획득한 후에, 세속주의자들은 하느님 자신에게 대항하는 반기를 들도록, 때로는 잠잠하게 그리고 때로는 공개적으로 조성하며 계속 나아간 것이었다.




195:8.7(2081-7)

너희는 미국 산업주의의 놀라운 창조성과 그리고 서방 문명의 전례 없는 물질적 진보를 이룩하게 한 세속주의 반기(叛起)에 빚을 지고 있다. 그리고 세속주의의 반기가 너무 멀리 갔고 그리고 하느님과 참된 종교에 대한 시력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세계 전쟁과 국제적 불안정의 예기치 못한 결과가 또한 뒤 따라 발생되었다.




195:8.8(2081-8)

현대 세속주의 반기에서의 축복, 관용, 사회적 봉사, 민주적 정부, 그리고 시민의 해방을 누리기 위하여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과학을 증진시키고 교육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세속주의자들이 참 종교에 반목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195:8.9(2082-1)

그러나 세속주의가 생활의 확장에서의 모든 이러한 최근 수익에서의 유일한 본원은 아니다. 20세기의 수익 이면에는 과학과 세속주의 만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들의 인지되지 않은 그리고 인정받지 않은 영적 작용들이 있다. 




195:8.10(2082-2)

하느님 없이, 종교가 없이, 과학적인 세속주의는 결코 그 기세들을 합동할 수 없고, 그것의 다양하고도 경쟁적인 관심들, 종족들, 그리고 민족주의들을 조화시킬 수 없다. 이러한 세속주의의 인간사회는, 비교할 수 없는 물질주의적 성취에도 불구하고, 서서히 분열되고 있다. 이러한 반목에서의 분열을 막는 가장 주된 응집력 있는 기세는 민족주의이다. 그리고 민족주의는 세계평화의 가장 주된 장애물이다.




195:8.11(2082-3)

세속주의의 선천적인 결점은 정치와 힘을 위하여 윤리와 종교를 무시하는 것이다. 너희는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을 무시하거나 거부하면서, 사람들의 형제신분을 절대로 이룩할 수 없다.




195:8.12(2082-4)

세속의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 낙관주의는 환상이다. 하느님 없이는, 자유나 해방도, 재산이나 풍요도 평화로 인도할 수 없다. 




195:8.13(2082-5)

과학, 교육, 산업, 그리고 사회의 완벽한 세속화는 오직 재난으로 인도할 수 있을 뿐이다. 20세기의 초반 1/3 기간 동안, 유란시아인 들은 그 때 까지 전체 그리스도교 섭리시대 동안에 죽은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것은 물질주의와 세속주의의 무시무시한 추수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더욱 끔찍한 파괴는 이제부터 다가올 것이다.






9. 그리스도교의 문제

195:9.1(2082-6)

너희들의 영적 유산, 물질주의적 그리고 세속 시대의 불모의 시절에 이르기까지 여러 세기를 통하여 흘러내리고 있는 진리의 강의 가치를 간과하지 말라. 지나간 시대들의 미신 신조들로부터 벗어나려는 너희들의 온갖 값진 노력을 기울이면서, 너희가 영원한 진리를 견고히 붙잡고 있음을 확실히 하라. 그러나 인내하라! 현재의 미신 반기가 지나가면, 예수의 복음의 진리들이 새롭고 더 좋은 길을 비추기 위하여 영광스럽게 지속될 것이다. 




195:9.2(2082-7)

그러나 이교화 되고 사회화된 그리스도교는 손상되지 않은 예수의 가르침들과 새롭게 접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세상에서 주(主)의 일생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모자란다는 것이 서글프다. 예수의 종교에 대한 새롭고도 보다 충분한 계시가 물질주의적 세속주의의 제국을 정복하고 그리고 물질주의적 자연주의의 세계 지배를 타도하도록 운명되어있다. 유란시아는 이제 사회적 재조정, 도덕적 소생(蘇生), 그리고 영적 계몽의 가장 놀랍고 그리고 매혹적인 신(新)시대들 중의 하나의 바로 그 고비에서 지금 떨고 있다. 




195:9.3(2082-8)

예수의 가르침들은, 비록 크게 변경되기는 하였지만, 그들 탄생시절의 신비 종파들, 암흑기의 무지와 미신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이제는 20세기의 물질주의, 기계론, 그리고 세속주의에 대하여 서서히 승리하고 있다. 그리고 큰 시험과 패배의 위협을 받는 그러한 시기는 항상 위대한 계시가 내리는 시기이다.




195:9.4(2082-9)

종교는 새로운 지도자들, 예수와 그의 비할 데 없는 가르침에만 오로지 용감하게 의존하려는 영적 남자와 여자를 필요로 하고 있다. 만약에 그리스도교가 사회적이고 물질적 문제에 계속 바쁘게 일하면서 자신의 영적 임무에 게으름을 끈질기게 지속한다면, 영적 부흥은 오로지 사람의 영적 쇄신에만 헌신할 수 있는 예수의 종교에 대한 이들 새로운 선생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런 다음에, 영으로-태어난 이들 혼들은 세상의 사회적, 도덕적, 경제적, 정치적 재조직에 필요한 지도력과 영감(靈感)을 신속하게 공급할 것이다.




195:9.5(2083-1)

현대는 사실들과 모순되고, 그리고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의 최고 개념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종교는 받아들이기를 거부할 것이다. 지금 이 시대의 왜곡되고 수치스럽게 타협된 그리스도교에 대한 참되고 근본적인 기초들─예수의 참된 일생과 가르침들─을 다시 발견할 시간의 종이 울리고 있다. 




195:9.6(2083-2)

원시인은 종교적인 두려움에 미신적 속박의 일생을 살았다. 현대의 문명인들은 강력한 종교적 신념의 지배 아래에 붙잡힌다는 생각에 두려워한다. 사색하는 사람은 종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을 항상 염려해왔다. 강력하고 감동시키는 종교가 사람을 지배하려고 위협할 때, 그는 변함없이 그것을 합리화, 전통화, 그리고 제도화하려고 시도하며, 그렇게 함으로서 그에 대한 통제를 얻으려고 바라고 있다. 그러한 과정에 따라서, 계시 종교조차도 사람이-만든 사람이- 지배하는 것으로 된다. 현대의 남녀 지능존재들은 예수의 종교가 자신들에게─그리고 자신들을 가지고─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그것을 회피한다. 그리고 그런 모든 두려움에는 모두 그럴만한 근거를 지니고 있다. 예수의 종교는, 정말로 그 신자들을 지배하고 변환시키는데, 사람들에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데에 자신들의 일생을 바치도록 요구하며, 삶의 에너지를 사람의 형제신분의 사심 없는 봉사에 바치는 것이 필요하다. 




195:9.7(2083-3)

이기적인 남자와 여자들은 필사 사람에게 제공된 가장 위대한 영적 보물에 대하여서도 결코 그러한 값을 치르려 하지 않을 것이다.<f> 어리석고 현혹시키는 이기심의 추구에 수반되는 비참한 실망감으로 사람이 충분히 환멸을 느끼게 되고, 뒤이어 형식화된 종교의 불모지를 발견하고 난 후에야, 오직 미몽에서 깨어나기에 충분하게 될 것이고, 그는 왕국 복음, 나사렛 예수의 종교로 전심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다. </f>

<f></f>


195:9.8(2083-4)

세상은 더욱 더 손을 거치지 않은 원래 그대로의 종교가 필요하다. 그리스도교─20세기의 종교 중에서 최고─조차도 단지 예수에 관한 종교일 뿐이며, 더구나 스쳐간 사람의 손길을 너무도 많이 체험하고 있는 종교다. 사람들은 그들의 인정된 종교 교사들이 전해주는 대로 자신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고 있다. 만일 실제로 이 세상에 사셨던 원래 그대로의 예수를 볼 수 있고, 생명을 주는 그의 가르침들을, 손을 거치지 않은 원래 그대로를 알게만 된다면, 세상은 얼마나 큰 깨우침을 체험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사물을 묘사하는 말이 그것을 직접 보는 것만큼 전율을 줄 수 없으며, 또한 교리 말씀이 하느님의 현존을 아는 체험만큼 사람의 혼에 영감을 줄 수는 없다. 그러나 기대하는 신앙은, 저 건너 세상들에서의 신성한 가치의 영원한 영적 실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사람의 혼에 있는 소망의-문을 언제나 활짝 열어 놓을 것이다.




195:9.9(2083-5)

그리스도교는 인간의 탐욕, 전쟁의 광기, 그리고 힘에 대한 강한 욕망의 도전 앞에서 그것의 이상들을 과감히 낮추어 버렸다; 그러나 예수의 종교는, 사람에게 들어있는 최상의 것을 향하여 동물적 진화의 이 모든 유산들의 단계를 넘어서라고 그리고, 은혜로서, 참된 인간 운명의 도덕적 정상을 달성하라고 외치는, 순결하고 초월적인 영적 호소로서 서 있다.




195:9.10(2083-6)

그리스도교는 형식주의, 과대한 조직화, 주지(主知)주의, 그리고 다른 비(非)영적인 경향들에 의해 서서히 죽을 위협을 받고 있다. 현대 그리스도교 교회는, 이어지는 인류 세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적 변환의 효력을 발휘하도록 예수가 위임한 것과 같은, 그러한 활기찬 신자들의 형제신분이 아니다. 




195:9.11(2083-7)

소위 그리스도교라는 공동체는 종교적인 믿음과 관습은 물론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운동이 되어 버렸다. 현대 그리스도교의 물줄기는 많은 고대의 이교도의 늪과 야만적인 습지(濕地)의 물을 빨아들이고 있다; 그 배타적인 근원이라고 여겨지고 있는 갈릴리 고원은 물론, 마찬가지의 많은 낡은 문화적 분수 구멍들이 물을 이 현대의 문화적 물줄기 안으로 흘려보내고 있다. 






10. 미래

195:10.1(2084-1)

그리스도교는 이 세상에 정말로 위대한 봉사를 해 온 것이 사실이지만, 지금 가장 절실한 것은 예수이다. 세계는 주(主)를 모든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영으로 태어난 필사자들의 체험 안에서, 이 세상에 다시 사는 예수를 보아야할 필요가 있다. 원시 그리스도교의 부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무익하다; 너희는 너희가 있는 자리에서 앞으로 나가야만 한다. 현대 문화는 예수의 일생에 대한 새로운 계시로 영적 세례를 받아야만 되고, 영원한 구원에 대한 그의 복음의 새로운 납득의 빛이 비쳐져야 한다. 그리고 예수가 그렇게 높이 들어 올려졌을 때, 그가 모든 사람들을 그에게로 끌어당길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정복자이기 보다는, 오히려 그 이상의 것, 모든 사람들에 대한 증진된 삶과 영감(靈感)의 흘러넘치는 근원이 되어야한다. 종교는 개인적 체험 안에서 하느님 현존의 실체에 대한 발견으로 인하여 신성하게 되기 전에는 단지 하나의 고양된 인본주의에 불과하다.




195:10.2(2084-2)

세상에서 예수의 일생의 아름다움과 장엄함, 인간성과 신성, 소박함과 독특성은 사람을 구원하고 하느님을-계시하는 그렇게 마음을 때리고 호소하는 장면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하여 모든 시대의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하느님의 사람 형체로서의 그러한 초월적인 증여로부터 감히 교리를 만들어 내거나 영적 속박의 신학 체제들을 창조하는 것으로부터 효과적으로 제지되어야만 한다. 예수 안에서 우주는, 사랑의 영이 시간의 물질적인 불리한 조건들을 이겼고 그리고 물리적 기원의 사실을 극복했던 필사 사람을 만들어내었다. 




195:10.3(2084-3)

항상 마음에 간직하라 - 하느님과 사람은 서로 필요하다. 그들은 우주 최종의 신성한 운명으로 영원한 개인성 체험의 충만하고 최종적인 달성에 다다르는데 서로가 필요하다.




195:10.4(2084-4)

“하느님의 왕국이 너희 안에 있다.”는 말은 예수가 한 것 중에서, 그의 아버지는 살아 계시며 사랑하시는 영이시라는 선언 다음으로, 아마도 가장 위대한 선언이었다. 




195:10.5(2084-5)

주(主)를 향한 승리하는 혼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 그의 형제를 사랑으로 끌어안고 그리고 영적 인도아래 그를 필사 실재의 보다 높고 신성한 목표로 휘몰아치는 그러한 예수 공동체를 예시하는 것은, 사람과 그의 세계를 변환시키는 충동, 의무, 또는 집회에서 터져나오는 경주의 첫번째 걸음과 같은 그러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봉사와 해방을-사랑하는 헌신으로 그러한 두번째 걸음이다. 그리스도교는 비록 지금 첫걸음을 기꺼이 나아가고 있지만, 진정으로 두번째 걸음을 내딛는 자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진실로 그가 그의 제자들에게 삶을 살고 사랑하고 그리고 봉사하라고 가르친 대로 삶을 살고 사랑하는 예수의 공언된 추종자들이 너무 적기 때문에─인류가 도덕적 암흑에서 풀이 죽고 비틀거린다. 




195:10.6(2084-6)

왕국의 예수와 형제신분에서의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수단을 이용하여 새롭고도 변환된 인간 사회를 건설하는 모험으로의 부름은, 육신에서의 예수님 동행자로서 이 땅위에서 거닐었던 날들 이후로는, 사람들이 그렇게 자극을 받아본 적이 없으므로, 그를 믿는 모든 이들을 전율케 할 것이다. 




195:10.7(2084-7)

하느님의 실체를 부인하는 사회적 체계나 정치적 제도는 인간 문명의 증진에 어떤 건설적이고 지속적인 방법으로도 기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오늘날 세분되고 세속화됨으로써, 그것의 앞으로의 발전에 가장 큰 유일한 장애를 주고 있다; 특별히 이것은 동양에 관한 한 참말이다. 




195:10.8(2084-8)

교회중심주의는 당장 그리고 언제까지나 살아있는 신앙, 성장하는 영, 그리고 하늘의 왕국의 영적 연합으로 사람의 형제신분을 이루고 있는 예수의 신앙-동료들이 직접 접하는 체험과, 양립될 수 없다. 과거 업적의 전통들을 지키려는 칭찬할만한 욕망은 종종 낡은 경배 체계의 방어로 이끈다. 고대의 생각 체계들을 육성하고자 하는 선의의 욕망은, 현대인들의 확장하고 전진하는 영적 갈망들을 만족시키도록 고안된, 새롭고도 적당한 수단들과 방법들의 후원을 효과적으로 제지한다. 마찬가지로, 20세기의 그리스도교 교회들은 위대하게 서 있다, 그러나, 전적으로 의식하지 못하지만, 참된 복음─나사렛 예수의 가르침들─의 즉각적인 진보에 장애물들이다. 




195:10.9(2085-1)

복음의 그리스도에게 기쁨으로 충성을 바치려는 많은 진지한 사람들은, 그의 일생과 가르침들을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그리고 그가 기초하였던 것에 대해 잘못 가르침을 받아온 교회를 열심히 후원하는 것이 매우 힘들다는 것을 발견하고 있다. 예수는 소위 그리스도교 교회라는 것을 세우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그의 본성과 일치되는 모든 방식으로, 세상에서의 그의 필생의 일에 대한 실재적인 최고의 주창자로서 그것을 육성해 왔다.




195:10.10(2085-2)

만약에 그리스도교 교회가 주(主)의 계획을 용감하게 지지하기만 한다면, 분명히 무관심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러한 영적 약속에 참여하기 위하여 몰려들 것이며, 이 커다란 모험과 끝까지 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195:10.11(2085-3)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반하여 갈라진 집은 설 수 없다”는 자신의 표어들 중의 하나에 구체화되어있는 운명에 직면하고 있다. 비(非)-그리스도교 세계는 파벌화된 그리스도교계에 항복하지 않을 것이다. 살아있는 예수만이 그리스도교의 가능한 통일의 유일한 희망이다. 참된 교회─예수와의 형제신분─는 보이는 것이 아니며, 영적이며, 부득이한 획일이 아니라, 합일로 특징지어진다. 획일은 물질주의적 본성을 갖는 물리적 세계의 꼬리표이다. 영적 합일은 살아있는 예수와 신앙 결합의 열매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하느님 왕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과 그리고 영적 형제신분의 진보를 더 이상 방해하는 것을 거절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러한 형제신분은 제도화된 사회 조직과는 대조가 되는, 살아있는 유기체가 되도록 운명되어 있다. 그것이 그러한 사회 조직들을 잘 활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것들이 대신 들어앉아서는 결코 안 된다.




195:10.12(2085-4)

그러나 20세기의 그리스도교조차도 결코 무시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오랜 세월 동안 많은 종족들의 하느님을-아는 사람들의 병합된 도덕적 진수(眞髓)의 산물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실로 세상의 선(善)을 위한 가장 큰 힘들 중의 하나이었다, 그리고 그러므로 그것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 결점들에도 불구하고, 누구도 그것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교는, 막강한 도덕적 감정에 반영적인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고, 여전히 애쓰고 있다. 




195:10.13(2085-5)

그러나 교회가 상업과 정치에 가담한 것은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러한 거룩하지 않은 동맹은 주(主)에 대한 파렴치한 배반이다. 그리고 진리를 순수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제도화된 강력한 교회가 새로 발생되는 신앙을 종종 감히 질식시키려고 하였으며, 비정통적인 옷을 입고 우연히 나타났던 진리의 전달자들을 박해하려고 하였던 것을 좀처럼 잊지 않을 것이다. 




195:10.14(2085-6)

세상에 그러한 형태의 경배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존재하지 않았었다면, 그러한 교회가 살아남지 못했으리라는 사실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영적으로 나태한 많은 사람들은 의식적이고 신성한 전통의 오래되고 권위적인 종교를 갈망한다. 모든 사람들에게 종교적 권위 없이 지내라고 하기에는 인간 진화와 영적 진보가 도무지 충분치 않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왕국의 형제신분은, 만약에 그들이 오직 진실로 영-인도된 하느님의 아들이 기꺼이 되려한다면, 사회적 그리고 기질에서 다양한 등급들의 가족 집단들을 아마도 잘 포함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의 이 형제신분에는, 그 어떤 분파적 경쟁이나 집단적 적의 또는 도덕적 우월성과 영적 무오성(無誤性)에 대한 주장도 설 자리가 없다.




195:10.15(2086-1)

그리스도교인 들의 이러한 다양한 집단화(集團化)들은 서방 문명의 다양한 민족들 중에서 신자가 되고자 하는 다양한 다른 유형들을 수용하는 일에 기여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그리스도교계의 분파는, 예수의 복음을 동양 사람들에게 전해주려고 시도할 때 심각한 약점을 제공한다. 이들 종족들은 점점 더 예수에 관한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 그리스도교와는 떨어져서, 많이 다른, 별개의 예수의 종교가 있다는 것을 아직까지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195:10.16(2086-2)

유란시아의 위대한 희망은, 오늘 날에 예수를 따른다고 공언하는 추종자들의 수많은 가족을, 사랑 가득한 봉사 안에서 영적으로 결합시킬, 바로 그러한 새롭고도 확대된 예수의 구원의 메시지가 함께 제시되는 예수의 새로운 계시에 대한 가능성 안에 누워 있다.




195:10.17(2086-3)

세속적인 교육일지라도, 만약에 일생 설계와 성격 진보에 관여시키는 방법을 젊은이에게 가르치는 일에 좀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려 한다면, 이 위대한 영적 부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모든 교육의 목적은 일생의 최극 목표, 잘 균형이 잡히고 장엄한 개인성의 계발을 육성시키고 진행시키는 것이어야만 한다. 너무 지나친 자아-충족대신에 도덕적 교육단련에 대한 가르침이 대단히 필요하다. 그러한 기초 위에서 종교는 필사자의 생활을 확대시키고 풍성하게 하는, 그리고 심지어는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고 강화시키는 영적 자극을 제공할 수 있다.




195:10.18(2086-4)

그리스도교는 즉흥으로 만들어진 종교이며, 따라서 저속 기어로 운전되어야만 한다. 고속 기어의 영적 행위들은 새로운 계시와 그리고 진정한 예수의 종교를 보다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야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는, 십자가에 못박힌 목수의 평범한 제자들이 저들 가르침들을 시작하여 300년 동안 로마세계를 정복하고 그 후에 로마를 타도한 야만인들에게도 승리가 계속되었다는 것을 볼 때, 위대한 종교이다. 바로 이 그리스도교가 히브리 신학과 그리스 철학의 전체적인 흐름을 정복─흡수하였고 드높였음─하였다. 그러고 나서, 이 그리스도교 종교가 신비종파와 이교도의 과도한 투여의 결과로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혼수상태에 놓이게 되었을 때, 그것은 스스로 다시 일어났으며 실질적으로 전체 서방 세계를 다시 정복하였다.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불멸화하기에 충분할 만큼 예수의 가르침들을 간직하고 있다.




195:10.19(2086-5)

만약에 그리스도교가 예수의 가르침들을 더 많이 파악할 수만 있다면, 현대인들이 그의 새롭고도 증가되는 복잡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그를 돕는 것을 더욱 많이 할 수 있을 것이다. 




195:10.20(2086-6)

그리스도교는 모든 세계의 마음속에, 사회 체계, 산업 생활. 그리고 서방 문명의 도덕적 표준의 일부로서 동일시되어 왔기 때문에 엄청난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그렇게 그리스도교는 부지불식간에, 이상주의가 없는 과학, 원칙이 없는 정치, 일하지 않고 얻는 재물, 억제되지 않는 쾌락, 성격이 없는 지식, 양심이 없는 권력 그리고 도덕성이 없는 산업을 묵인하고 있는 범죄 밑에서 비틀대는, 그러한 사회를 후원하는 것처럼 보였다.




195:10.21(2086-7)

현대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자신이 그렇게 씩씩하게 찬양하는 십자가 앞에 겸손하게 허리를 굽히고, 거기에서 나사렛의 예수로부터 필사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진리─하느님의 아버지신분과 사람의 형제신분에 대한 살아있는 복음─을 새롭게 배우면서, 서방 문명의 사회 체계와 산업 정책을 후원하는 것을 중지해야 한다는 것에 있다.





출처 : http://urantian.kr/book/read_ub.htm 

[출처] 제195편 오순절 뒤에|작성자 야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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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제4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PART IV.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제 196 편  예수의 신앙
196 :0.1(2087-2)
예수는 하느님에 대하여 고귀하고 진심으로의 신앙을 향유(享有)하였다. 그는 필사 실재의 일반적인 부침(浮沈)을 체험하였다, 그러나 하느님의 확실한 보호와 인도하심에 대해 신앙적으로 의심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의 신앙은 신성한 현존, 내재(內在)하는 조절자의 활동으로 태어난 통찰력의 결과였다. 그의 신앙은 전통적인 것 또는 단지 지적인 것도 아니었으며; 그것은 전적으로 개인적 그리고 순전히 영적인 것이었다.




196 :0.2(2087-2)

인간 예수는 하느님을 거룩하고 정의(正義)롭고 위대한 분일뿐만 아니라 진실하고 아름답고 선한 분으로 보았다. 이러한 모든 신성의 속성들을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으로써 마음속에 깊이 간직하였다. 예수의 하느님은 “이스라엘의 거룩한 분”이시며 동시에 “살아 계시며 사랑하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일치하였다.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의 개념이 예수로부터 시작된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하느님에 대한 새로운 계시를 성취하고 또한 모든 필사 창조체들이 이 사랑의 아버지의 자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선언함으로서, 이것을 숭고한 체험의 관념으로 고양시키고 높였다. 




196 :0.3(2087-3)

예수는 분투하는 혼이 우주와의 전쟁에서 그리고 적의에 차고 죄로 가득 찬 세상과의 사생결투에서 하듯이 하느님에 대한 신앙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는 신앙에 단지 어려움 속에서 위로로 위협받는 절망에서 위안으로 호소하지 않았다; 신앙은 단지 즐겁지 못한 현실이나 혹은 삶의 슬픔들을 위한 환상(幻相)적인 보상이 아니었다. 필사 실재의 자연적 어려움과 현세적인 모순들에 바로 직면하여, 그는 최극의 평온과 하느님에 대한 명백한 신뢰를 체험하였으며 그리고, 신앙으로 하늘에 아버지의 바로 그 현존 속에서 살아가는 엄청난 감격을 느꼈다. 그리고 이 승리한 신앙은 실제 영적 달성의 살아있는 체험이었다. 인간 체험의 가치들에 예수의 커다란 공헌은 그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관하여 많은 새로운 관념들을 계시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하느님께 대한 살아있는 신앙을 장엄하게 그리고 인간적으로 실증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우주의 모든 세상들 어디에서, 어느 한 필사자의 일생 속에, 나사렛 예수의 인간 체험 속에서처럼 하느님이 그토록 살아있는 실체가 되신 적은 없었다.




196 :0.4(2087-4)

주(主)의 유란시아 일생 속에서, 지역 창조의 이 세계와 다른 모든 세계들은 새롭고 더 높은 유형의 종교, 우주 아버지와의 개인적인 영적 관계에 근거하고, 순수한 개인적 체험의 최극 권위에 의해 전적으로 확인된 종교를 발견한다. 예수의 이 살아있는 신앙은 지적(知的)인 반영 이상이었으며, 그리고 신비한 명상이 아니었다.




196 :0.5(2087-5)

신학은 신앙을 고정시키고, 정형화하고, 정의(定意)하고, 독단적으로 단정하겠지만, 그러나 예수의 인간 일생에서 신앙은 개인적이고, 살아있고, 근본적이고, 자발적이었으며, 순전히 영적이었다. 이 신앙은 전통에 대한 숭상이 아니었고, 그가 경건한 신조(信條)로 가졌던 단순한 지적 믿음도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그를 단단하게 붙잡은 숭고한 체험이자 심오한 신념이었다. 그의 신앙은 너무나 실제적이고 모든 것을-감싸 안는 것이기 때문에, 그 어떤 영적 의심들도 절대적으로 날려버리고, 상충되는 모든 욕망을 실질적으로 파괴하였다. 아무 것도 이 열렬하고 숭고하며 확실한 신앙의 이 영적 정박지(碇泊地)로부터 그를 떼어놓을 수 없었다. 명백한 패배에 직면하거나 또는 실망과 위협적인 절망의 심한 고통 속에서조차도, 그는 두려움 없이 그리고 영적 불굴성(不屈性)을 충분히 의식하면서 신성한 현존 안에 차분하게 서 있었다. 예수는 위축되지 않는 신앙 소유의 활력을 불어넣는 확신을 향유하였으며, 그리고 일생의 시험적인 각각의 환경들에서 그는 아버지의 뜻에 의심이 일어나지 않는 충성을, 끊임없이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 장엄한 신앙은 치욕스러운 죽음의 압도하는 위협에까지도 꺾어지지 않았다. 




196 :0.6(2088-1)

종교의 특질에는, 강력한 영적 신앙은 너무나 많은 경우에 비참한 광신(狂信), 종교적 자기의 과장으로 직접 이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에게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았다. 이 영적 고양(高揚)은 하느님과 그의 개인적 체험의 전혀 무의식적이고 자연적인 혼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그는 실생활에 있어서 그의 특별한 신앙이나 영적 달성으로 불리하게 영향을 받지 않았다. 




196 :0.7(2088-2)

예수의 온몸을-불태우고 그리고 불굴의 영적 신앙은 절대로 광신적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실질적 그리고 평범한 사회적, 경제적, 그리고 도덕적 일생의 환경에서의 비례적인 가치에 대한 그의 잘-균형 잡힌 지적 판단들을 가지고 결코 벗어나려고 시도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사람의 아들은 눈부시게 통합된 인간 개인성이었다; 그는 완전하게 증여된 신성한 존재였다; 그는 또한 이 땅에서 단일 개인성으로 기능하는 병합된 인간으로서 그리고 신성한 존재로서 장엄하게 합동되었다. 주(主)는 혼의 신앙과 성숙되는 체험의 지혜로운-평가를 항상 합동시키셨다. 개인적 신앙과 영적 소망 그리고 도덕적 헌신은 항상, 실체에 대한 예리한 깨달음과 모든 인간적 충실함─개인적 명예, 가족적 사랑, 종교적 의무, 사회적 의무, 그리고 경제적 필요성─을 성스럽게 하심과 조화롭게 연합함으로서 그로 인한 비할 데 없는 종교적 합일 안에 연관되어 있었다. 




196 :0.8(2088-3)

예수의 신앙은 모든 영적 가치들을 하느님의 왕국에서 발견되는 것처럼 그렇게 눈에 보여주었다; 따라서 그는 “너희는 먼저 하늘의 왕국을 찾으라.”고 말씀하였다. 예수는 발전되고 이상적인 왕국의 동료관계로 “하느님의 뜻”의 성취와 달성을 보았다.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친 기도의 가장 핵심은 “당신의 왕국이 임하시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이었다. 이와 같이 왕국이 하느님의 뜻을 포함하는 것임을 이해하면서, 그는 그것의 실현에 원인이 되도록, 놀랄만한 자아-잊어버림과 끝없는 열정으로 자신을 바치셨다. 그러나 모든 그의 극심한 임무와 그리고 그의 특별한 일생을 통하여 광신자들의 격분이나 종교적 이기주의자들의 피상적인 공허가 결코 나타나지 않았다.




196 :0.9(2088-4)

주(主)의 일생 전체는 한결같이 이 살아있는 신앙, 이 숭고한 종교적 체험에 의해 조절되었다. 이 영적 태도는 그의 사고와 느낌, 그의 믿음과 기도, 그의 가르침과 설교들을 전적으로 지배하였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인도와 보호의 확신과 보장에 대한 아들의 이 개인적 신앙은 그의 독특한 일생에 영적 실체의 심오한 자질을 주었다. 그리고 아직, 신성과 가까운 관계의 이 깊은 의식에도 불구하고, 이 갈릴리인, 하느님의 갈릴리인은 선한 선생님이라고 불렸을 때,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라고 바로 응답하였다. 우리가 이와 같은 훌륭한 자아-망각을 대할 때, 우리는 어떻게 우주 아버지가 그에게 자신을 그렇게 충분히 나타내고 그리고 영역들의 필사자에게 그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발견하였는지 납득하기 시작한다. 




196 :0.10(2088-5)

예수는 그 영역의 사람으로서 모든 헌물 중에서 가장 큰 것; 신성한 뜻을 행하는 장엄한 봉사에, 자신의 뜻을 봉헌하고 헌신하는 것, 바로 그것을 하느님에게 가져다 드렸다. 예수는 언제나 일관되게 종교를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라는 의미에서 해석하였다. 주(主)의 생애를 공부할 때, 기도나 혹은 종교적 생활의 다른 면들에 관하여, 그가 무엇을 가르쳤나를 보기보다는, 그가 무엇을 행하였나를 바라보라. 예수는 종교적 의무로서 기도를 한 적이 결코 없었다. 그에게 기도는 영적 태도의 진지한 표현, 혼의 충성에 대한 선언. 개인적 헌신에 대한 낭송, 감사의 표현, 감정적 긴장의 방지, 갈등의 예방, 지능의 고양(高揚), 욕망을 고귀하게 만듦, 도덕적 결정의 입증, 생각의 풍성함, 더욱 높은 성향의 활력화, 충동의 봉헌, 관점들의 명백함, 신앙의 선언, 의지의 초월적 양도, 자신감의 숭고한 단언, 용기의 계시, 발견의 선언, 최극 헌신의 고백, 봉헌의 당위성, 어려움에서의 조절기법, 그리고 이기심, 악, 죄를 향해 달려가는 인간 성향을 물리치려는 병합된 혼의 힘들의 힘찬 동원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뜻을 행함에서, 기도하며 헌신하는 바로 그러한 일생을 사셨으며, 그러한 기도와 함께 자신의 일생을 승리로 마치셨다. 그의 비교될 수없는 종교적 일생의 비밀은 하느님 현존에 대한 이 의식(意識) 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지능적 기도와 진지한 경배─하느님과의 긴밀한 교제─에 의하여 얻었으며 인도됨이나, 음성이나, 상상력 또는 비상한 종교적 습관에 의해 얻으신 것이 아니었다.




196 :0.11(2089-1)

예수의 지상 일생 안에서 종교는 살아있는 체험, 영적 공경으로부터 실질적인 정의를 향한 직접적이고 개인적 활동이었다. 예수의 신앙은 신성한 영의 초월적 열매들을 맺었다. 그의 신앙은 아이들의 것과 같이 미숙하거나 경솔하지 않았다, 그러나 많은 면에서 어린이 마음의 의심하지 않는 신뢰와 비슷하였다. 예수는 어린아이가 부모를 신뢰하는 만큼이나 하느님을 신뢰하였다. 예수는 우주에 대한 심오한 자신감을 가졌다─어린아이가 자신의 부모의 환경을 신뢰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우주의 근본적인 선에 대한 예수의 전심어린 신앙은 지구 환경의 안전성에 대해 어린아이의 신뢰와 매우 흡사하였다. 그는 어린아이가 그들의 땅에서의 부모에게 의지하듯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의지하였다, 그리고 그의 열렬한 신앙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지나친 보호에 대한 확실성을 한 순간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두려움과 의심 그리고 회의(懷疑)로 인하여 심각하게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불신이 그의 일생의 자유롭고 근본적인 표현을 가로막지 못하였다. 그는 다 자란 어른의 건장하고 지적인 용기를 믿는 아이의 진지하고 확신에 찬 낙천성과 병합하였다. 그의 신앙은 두려움이 없는 신뢰의 절정으로 자랐다. 




196 :0.12(2089-2)

예수의 신앙은 어린아이의 신뢰의 순수성을 가졌다. 그의 신앙은 그렇게 절대적이고 의심이 없어서 다른 동료 존재들과의 만남에 대한 매력과 우주의 경이로움들에 반응하였다. 신성한 것에 대한 그의 신뢰감은 그렇게 완벽하고 그렇게 자신하였음으로 그것은 절대적 개인적 안전에 대한 기쁨과 확신을 가져왔다. 그는 종교적 체험에서 주저하는 변명이 없었다. 충분히-자란 사람의 이 위대한 지성에서는 어린아이의 신앙이 종교적 인식에 관계되는 모든 일에서 최극을 지배하였다. 그가 언젠가 “너희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너희는 왕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한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예수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어떤 뜻으로도 어린아이다운 것이 아니다.




196 :0.13(2089-3)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와 함께 믿으라고, 하느님 사랑의 실체를 믿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아들관계에 대한 확신의 보장을 충만한 자신감으로 받아들이라고 요구하였다. 주(主)는 모든 그의 추종자들이 그의 초월적 신앙을 충분히 나누어 가지기를 바라셨다. 예수는 자신이 믿었던 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가 믿었던 것처럼 믿으라고 그의 추종자들에게 가장 비장하게 촉진하였다. 이것이 바로 “나를 따르라”라는 그의 한 가지 최극 요구의 충만한 의의(意義)이다.




196 :0.14(2090-1)

예수의 지상 일생은 단 한 가지의 목적─아버지의 뜻을 행함, 인간의 일생을 종교적으로 그리고 신앙으로 삶─에 바쳐졌다. 예수의 신앙은 믿는 것이었다,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이, 그러나 그것은 전적으로 가정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강건하고 남자다운 결정을 내렸다, 수많은 실망들에 용감하게 대처하였고, 엄청난 어려움들을 단호히 극복하였으며, 의무의 엄격한 요구들에 망설임 없이 직면하였다. 예수가 믿었던 것을 믿고 그리고 그가 믿은 대로 믿기 위해서는 강한 의지와 끊임없는 자신감이 요구되었다. 






1. 예수─사람

196 :1.1(2090-2)

아버지의 뜻과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대한 예수의 헌신은 필사자의 결정과 인간 결심 이상이었다; 그것은 그러한 아낌없는 사랑의 증여에 전심으로 그 자신의 헌신이었다. 미가엘의 주권의 사실이 아무리 크다 할지라도, 너희는 인간 예수를 사람들로부터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 주(主)는 하느님으로서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서 높은 자리에 오르셨다; 그는 사람에게 속한다; 사람들은 그에 속한다. 종교가 스스로, 분투하는 필사자들로부터 인간 예수를 떼어놓을 정도로 그렇게 잘못 해석되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그리스도의 인간성과 신성에 대한 토론들이 나사렛 예수가 신앙이 깊은 사람이며, 신앙으로 하느님의 뜻을 알았고 행함을 성취하였다는 구원의 진리가 흐려지지 않도록 하여라; 그는 이제까지 유란시아에 살았던 최상의 참된 신앙인이었다.




196 :1.2(2090-3)

19 세기의 신학적 전통과 종교적 독단 속에 예수를 묻어놓은 무덤으로부터, 인간 예수에 대한 상징적인 부활을 증언할 시기가 무르익었다. 나사렛 예수가 영화롭게된 그리스도라는 눈부신 개념으로 더 이상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 이 계시를 통하여, 사람의 아들이 전통적 신학의 무덤으로부터 회복되어야하고 그리고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는 교회와 다른 모든 종교에게 살아 계신 예수로서 제시된다면 얼마나 초월적인 봉사일 것인가! 그리스도 신자 교인들의 형제관계는, 주(主)를 “뒤 따르는 것”이 가능하게 되면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과 사람의 이타적 봉사에 몸을 바친 종교적 헌신이라는 그의 실제 삶의 실연 안에서 그를 따라 신앙에서의 그리고 삶의 실천에서 주저없이 그러한 조정을 이루게 될 것이 분명하다. 공언된 그리스도교인들이 사회적인 체면과 경제에서의 이기적 조절-불량이라는 자아-충족적이고 헌신하지 않은 동료관계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만약 갈릴리의 예수가 개인적인 종교적 삶의 이상(理想)으로써 필사 사람들의 마음과 혼 속에 본래의 자리를 잡았을 때, 제도화된 그리스도교는 전통적 성직 권위의 위험성, 아니 심지어 전복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두려워 하는가? 만약 예수의 살아있는 종교가 예수에 대한 신학적인 종교를 갑자기 대체한다면, 그리스도교 문명에서의 사회적인 재조정, 경제적 변환, 도덕적 원기의 회복, 그리고 종교적 교정은 정말로 극적이고도 혁명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196 :1.3(2090-4)

“예수를 따른다”는 것은 그의 종교적인 신앙을 개인적으로 공유하고, 사람을 위하여 사심 없이 봉사한 주(主)의 일생의 영(靈)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는 예수가 믿었던 것을 찾아내고, 그의 이상들을 발견하며, 그리고 그의 드높여진 일생의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분투하는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 중에서, 가장 커다란 가치가 있는 것은 예수의 종교적 일생과 그가 어떻게 그 삶을 사셨는지를 아는 것이다.




196 :1.4(2090-5)

평민들은 예수의 말을 즐겁게 들었다, 그리고 만약에 그러한 진리들이 다시 세상에 선포된다면, 성화(聖化)된 종교적 동기를 지닌 그의 진지한 인간 일생의 발표에 그들은 다시 한 번 응답할 것이다. 사람들이 그의 말을 즐겁게 듣는 것은 그가 그들 중의 하나, 겸손한 보통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종교 교사(敎師)는 진실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196 :1.5(2091-1)

겉으로 나타난 육신으로 예수의 일생을 모방하는 것이 왕국을 믿는 자들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가 하느님을 신뢰하였던 것처럼 하느님을 신뢰하고, 그가 사람들을 믿었던 것처럼 사람들을 믿는 것; 바로 그러한 그의 신앙을 나누어야한다. 예수는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 대하여나 사람들의 형제신분에 대하여 논쟁한 적이 없었다; 그는 전자에 대해서는 살아있는 예증이었고 후자에 대해서는 심오한 실증이었다.




196 :1.6(2091-2)

사람들이 인간의 의식(意識)으로부터 신성한 것의 실현으로 진보해야만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도 또한 사람의 본성으로부터 하느님 본성의 의식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주(主)는 그의 필사 지성의 신앙과 내재하는 조절자의 활동들의 결합된 성취로 인간으로부터 신성으로의 이 위대한 상승을 이루셨다. 신성의 전체성을 달성한 사실- 실현화는 (이 기간 내내 인간성의 실체를 충분히 의식하면서) 점진적으로 신성화되는 신앙의 의식의 일곱 단계들을 따랐다. 이러한 점진적인 자아-실현의 단계들은 주(主)의 증여 체험에서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건들로 구별 지어 졌다:1.생각조절자의 도착.
2.그가 12살 때 예루살렘에서 그에게 나타난 임마누엘의 사자(使者).
3.그의 세례에 부수된 명시들.
4.변화 산에서의 체험들.
5.모론시아 부활.
6.영의 상승.
7.그의 우주의 무제한적 주권을 수여한 낙원천국 아버지의 최종 포옹.






2. 예수의 종교

196 :2.1(2091-10)

언젠가는 그리스도교 교회 안에서, 우리들 신앙의 저자(著者)이며 종결자인, 예수의 섞이지 않은 종교적 가르침들로 돌아가려는 개혁이 충분히 깊게 일어날 것이다. 너희들은 예수에 대한 종교를 전파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필연적으로 너희들은 반드시 예수의 종교를 살아야만 한다. 오순절의 열광 속에 베드로는 자기도 모르게 새로운 종교, 부활하고 그리고 영광된 그리스도의 종교를 시작하였다. 사도 바울은 후에 이 새로운 복음을 그리스도교, 그 자신의 신학적 견해들을 구체화하고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난 그의 개인적 체험을 묘사한 종교로 변환시켰다. 왕국 복음은 갈릴리 예수의 개인적 종교 체험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그리스도교는 거의 오로지 사도 바울의 개인적 종교 체험 위에 기초를 두고 있다. 신약의 거의 모든 부분은, 의미심장하고 영감을 주는 예수의 종교적 일생에 대한 묘사보다는, 바울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토론과 그의 종교적 신념들에 대한 묘사에 치우쳐져 있다. 이 진술에 오직 두드러진 예외들은, 마태, 마가 그리고 누가 복음의 어떤 부분들을 제외하고는, 히브리서와 야고보서뿐이다. 베드로마저도 그의 글 속에서 단지 한번 그의 주(主)의 개인적인 종교적 일생에 눈길을 돌렸을 뿐이었다. 신약은 매우 훌륭한 그리스도교 사람들의 문서이지만, 예수닮은 사람이라 하기에는 빈약할 따름이다.




196 :2.2(2091-11)

육신으로서의 예수의 일생은 원시적 경외와 인간적 공경의 초기 관념에서부터 개인적인 영적 교제의 시기들을 통과하여 그가 최종적으로 아버지와 자신이 하나가 되는 의식의 발전되고 고양된 지위에 도달하기까지의 초월적인 종교적 성장을 묘사한다. 그리고 이렇게 예수는 한 번의 짧은 일생동안에, 사람이 지상에서 시작하여 낙원천국 이전 삶의 연속적인 단계들의 영 훈련 학교들에서 그의 오랜 체재를 마친 후에만 일반적으로 성취하는, 종교적 영적 진보의 체험을 가로질렀다. 예수는 개인적인 종교적 체험에 대한 신앙 확신들의 순수한 인간 의식으로부터 그의 신성한 본성이 적극적으로 실현되는 숭고한 영적 절정에까지, 그리고 우주 경영에 대한 우주 아버지와의 긴밀한 연합의 의식까지 진보하였다. 그는 그를 선한 선생이라고 부른 사람에게 저절로 그가 즉시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하느냐? 선한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니라”라고 말하도록 한 그러한 필자사로서 의존하는 겸손한 지위로부터, “너희 중의 누가 나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느냐?”라고 외치도록 그를 인도한 성취된 신성의 그 숭고한 의식에 이르기까지 진보하였다. 그리고 인간으로부터 신성한 것까지의 이 진보하는 상승은 전적으로 필사자 성취이었다. 그리고 그가 이렇게 신성을 이루었을 때, 그는 아직 동일한 인간 예수, 사람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아들, 이었다. 




196 :2.3(2092-1)

마가와 마태 그리고 누가복음은 그가 신성한 뜻을 확인하고 그 뜻을 행하려고 장엄한 투쟁에 임하고 있었을 때의 인간 예수의 모습을 조금 간직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가 신성의 충만한 의식으로 지상을 거닐었던 승리한 예수의 모습을 보여준다. 주(主)의 일생을 공부한 사람들이 저지른 큰 오류는, 어떤 사람들은 그를 전반적으로 인간으로 생각하였고, 한편 다른 사람들은 그를 오로지 신성으로만 생각하였다. 그의 모든 체험을 통하여 그는 진실로 인간인 동시에 신성이었으며, 지금도 여전히 그러하다.




196 :2.4(2092-2)

그러나 가장 큰 과오는, 인간 예수가 종교를 가지신 것으로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신성한 예수가 (그리스도) 하룻밤 사이에 종교로 되어버린 것이다. 바울의 그리스도교는 신성한 그리스도의 숭배를 확실히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그의 개인적 종교 신앙의 용기와 그의 내재하는 조절자의 영웅적 자질로, 인간성의 낮은 차원들에서부터 신성과 하나가 되기까지 상승하였으며, 그리하여 모든 필사자들이 그것을 통하여 인간성으로부터 신성으로 그렇게 상승할 수 있는 새롭고 살아있는 길이 되신 갈릴리의 투쟁하는 용감한 인간 예수를 거의 잃어버렸다. 영성(靈性)의 모든 단계들과 온 세상들에 있는 필사자들은 예수의 개인적 일생 속에서 그들이 가장 낮은 영 차원들에서 가장 높은 신성한 가치들까지, 모든 개인적인 종교 체험의 시작부터 끝까지 진보할 때 그들에게 힘을 주고 영감을 주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196 :2.5(2092-3)

신약 성경이 기록되던 당시에, 저자들은 부활한 예수의 신성을 가장 깊이 믿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은 하늘왕국을 더할 나위 없이 이루기 위하여 그의 즉각적인 땅으로의 재림을 헌신적으로 그리고 진심으로 믿었다. 주님의 신속한 재림에 대한 이러한 강한 신앙은 주(主)의 순전한 인간 체험들과 속성들을 보여주는 그러한 자료들을 기록에서 생략하려는 추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전체 그리스도교 운동은 나사렛 예수의 인간 모습으로부터 부활한 그리스도, 영광되고 그리고 곧-재림하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찬미로 향하였다. 




196 :2.6(2092-4)

예수는 하느님의 뜻을 행하고 인간 형제신분에 봉사하는 개인적 체험의 종교를 기초하였다; 바울은 영광된 예수가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그리고 형제신분은 신성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 구성된 종교를 기초하였다. 예수의 증여에 있어서, 이 두 가지 개념들은 그의 신성의-인간의 일생 속에 잠재되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의 지상의 일생에 따로 떼어놓을 수 없도록 묶여있고 최초의 왕국 복음에 영광스럽게 밝혀져 있었음으로 주(主)의 인간적이고 그리고 신성한 두개의 본성들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도록 그의 추종자들이 통합된 종교의 창조에 실패한 것은 정말 슬프다. 




196 :2.7(2093-1)

너희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진지하고 헌신적인 종교가였다는 것을 기억만 한다면, 너희들은 그의 일부 강한 표현들 때문에 충격을 받거나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전적으로 정화(淨化)된 필사자,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일에 남김없이 헌신적인 사람이었다. 그의 명백한 강한 말씀들 중 많은 것들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한 명령보다 신앙의 개인적 고백과 헌신의 서약이었다. 바로 이러한 오로지 한 가지의 목적과 사심 없는 헌신이 그로 하여금 하나의 짧은 일생에 인간 마음을 정복하고 그토록 엄청난 진전을 이루게 하였다. 그의 선언들의 많은 것들은 그가 모든 그의 추종자들에게 요구한 것이라기보다 그 자신에게 요구한 것에 대한 고백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왕국의 원인이 되는 것에 대한 그의 헌신에서, 예수는 그가 건너온 모든 다리들을 불태웠다;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데에 있는 모든 장애물들을 희생시켰다.




196 :2.8(2093-2)

예수는 가난한 사람들이 대개 진지하고 신앙심이 깊었기 때문에 그들을 축복하였으며; 부자들은 대개 방종하고 신앙심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을 비난하였다. 그는 신앙심 없는 가난뱅이를 똑같이 비난하였을 것이고 헌신적인 신앙심 깊은 부자를 칭찬하고자 하였을 것이다.




196 :2.9(2093-3)

예수는 사람들이 세상에서 편안함을 느끼도록 인도하였으며; 미신적인 금기사항에 노예가 된 상태로부터 그들을 해방시키셨으며, 세상이 근본적으로 악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들에게 가르치셨다. 그는 지상의 일생으로부터의 도피하기를 갈망하지 않았다; 육신으로 있으면서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행하는 기법을 터득하였다. 그는 현실 세계 한 복판에서 이상적인 종교적 일생을 성취하였다. 예수는 바울이 지닌 인간에 대한 염세적 견해를 갖지 않았다. 주(主)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아들들로 보셨고, 생존을 선택한 그들 앞에 펼쳐질 장엄하고 영원한 미래를 내다 보셨다. 그는 도덕적으로 회의적이지 않았다; 그는 사람을 부정적이 아니고 긍정적으로 보았다, 그는 대부분의 사람들을 사악하기보다는 약하다고 보았으며, 타락하기보다는 마음이 산란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가 어떻든지 간에, 그들은 모두 하느님의 자녀들이었으며 그의 형제들이었다.




196 :2.10(2093-4)

그는 사람들에게 시간 안에서 그리고 영원 안에서 그들 자신들에게 높은 가치를 두라고 가르쳤다. 예수가 사람들에게 인정한 이 높은 평가 때문에. 인간을 위한 끊임없는 봉사에 자신을 기꺼이 내어주시려고 하였다. 유한 존재에 대한 이 무한한 가치가 그의 종교에서 생명 요소인 황금률을 만들었다. 어떤 필사자가 예수가 가진 그에게 대한 특별한 신앙에 의해 높이 향상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 




196 :2.11(2093-5)

예수는 사회 발전을 위한 아무런 규율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의 임무는 종교적이었고, 그리고 종교는 전적으로 개별적인 체험이다. 사회의 가장 진보된 성취의 궁극적 목표도 하느님의 아버지신분에 대한 깨달음에 기초한 사람들과 예수의 형제신분을 초월하기를 바랄 수 없다. 모든 사회적 달성에 대한 이상(理想)은 이 신성한 왕국의 도래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3. 종교의 최극위

196 :3.1(2093-6)

개인적, 영적 종교 체험은 대부분의 필사자의 어려움들에 대한 효율적인 해결책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 문제들의 효과적인 분류자, 평가자, 그리고 조절자이다. 종교는 인간의 근심들을 없애거나 파괴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그것들을 용해하고, 흡수하고, 밝혀주고, 그리고 초월한다. 참된 종교는 필사자의 요구들에 효과 있게 적응하도록 개인성을 통일한다. 종교적 신념 ─내재하는 신성한 존재의 적극적인 인도─ 은 하느님-아는 사람들로 하여금, 우주의 첫째 원인을 그것으로 아는 지적인 논리와, 그리고 이 첫째 원인이 그 분 이며, 예수의 복음의 하늘에 계신 아버지이며, 인간 구원의 개인적 하느님이라고 단언하는 혼의 적극적 선언들 사이에 존재하는 깊은 틈에 다리를 놓게 한다. 




196 :3.2(2094-1)

우주 실체에는 꼭 세 가지의 요소들이 있다; 사실, 관념, 그리고 관계이다. 종교 의식은 이 실체들을 과학, 철학, 그리고 진리로 인지한다. 철학은 이 활동들을─물리적 실체, 지적 실체, 영적 실체─이성, 지혜, 그리고 신앙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이 실체들을 물질, 의미, 그리고 가치로 명명하려는 습관에 있다.




196 :3.3(2094-2)

실체에 대한 진보적인 이해는 하느님께 접근하는 것에 상응한다. 하느님의 발견, 실체로서의 정체성을 의식함은 자아-완성─자아-전체성, 자아-총체성─을 체험하는 것에 상응한다. 전체적 실체의 체험은 하느님에 대한 충만한 인식, 하느님을-아는 체험의 최종이다. 




196 :3.4(2094-3)

인간 일생의 충만한 총합은 사람은 사실에 의해 교육되고, 지혜에 의해 고귀해지며, 종교적 신앙에 의해 구원되고-정당화된다는 앎이다. 




196 :3.5(2094-4)

물질적인 확실성은 과학의 논리에 있다; 도덕적인 확실성은 철학의 지혜에 있으며; 영적 확실성은 참된 종교적 체험의 진리에 있다. 




196 :3.6(2094-5)

사람의 마음은 전적으로 물질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적 통찰력의 높은 차원들과 가치들의 신성에 상응하는 영역들에 도달할 수 있다. 사람의 마음에는 영의 핵─신성한 현존의 조절자─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 이 영 내주에 대한 서로 다른 세 개의 증거들이 있다: 




196 :3.7(2094-6)

1. 인도주의적 동료관계─사랑. 순전히 동물적인 마음이 자기 방어를 위하여 집단을 이룰 수는 있다, 그러나 영이 내주하는 지성만이 사심 없이 애타적으로 그리고 무조건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 




196 :3.8(2094-7)

2. 우주의 해석─지혜. 우주가 개별존재에게 친밀하다는 것을 영이-내주하는 마음만이 이해할 수 있다. 




196 :3.9(2094-8)

3. 일생의 영적인 평가─경배. 오직 영이 내주하는 사람만이 신성한 현존을 깨달을 수 있으며 그리고 이러한 신성의 미리 맛보는 것 안에서 보다 충만한 체험을 얻으려고 한다. 




196 :3.10(2094-9)

인간 마음은 참된 가치들을 창조하지 않는다; 인간의 체험은 우주적 통찰력을 주지 않는다. 통찰력, 도덕적 가치들을 인식과 영적 의미들을 식별함에 대하여 인간 마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발견하고, 인식하며, 해석하고, 그리고 선택하는 것이다. 




196 :3.11(2094-10)

우주의 도덕적 가치들은 필사자 마음의 세 가지 기본 판단들, 혹은 선택들에 의하여 지적 소유들이 될 수 있다: 1.자아의-판단─도덕적 선택. 
2.사회적-판단─윤리적 선택. 
3.하느님의-판단─종교적 선택. 

 

196 :3.12(2094-14)

이렇게 모든 인간 진보는 연합된 계시적 진화의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196 :3.13(2094-15)

사랑에 빠진 신성한 연인이 사람 속에 살지 않으면, 사심 없이 그리고 영적으로 사랑할 수 없다. 해석자가 마음속에 살지 않는다면, 사람은 우주의 합일성을 진정으로 깨달을 수 없다. 평가자가 사람과 함께 거주하지 않으면, 사람은 도저히 도덕적 가치를 평가할 수도 없고 영적 의미들을 깨달을 수도 없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 연인은 무한한 사랑의 바로 그 근원으로부터 내려온다; 이 해석자는 우주적 합일성의 한 부분이다; 이 평가자는 신성하고 영원한 실체의 모든 절대 가치들의 중심과 근원의 자녀이다. 




196 :3.14(2095-1)

종교적 의미─영적 통찰력─를 갖는 도덕적 평가는 선과 악, 진리와 실수, 물질과 영, 인간과 신성한 것, 시간과 영원 사이에서 개별적 선택을 의미한다. 인간의 생존은 영적 가치 분류자─내주하는 해석자이며 통합자─에 의해 선정된 그러한 가치들을 선택하는 일에 인간의 의지를 바치는 것에 상당히 많이 의존한다. 개인적 종교 체험은 두 위상으로 구성된다; 인간 마음속에서의 발견과 내재하는 신성한 영에 의한 계시이다. 지나친 억지이론을 통하여 또는 공언된 종교가들의 비종교적 행위의 결과로 한 사람, 심지어 사람들의 한 세대가 그들에게 내주하는 하느님을 발견하려는 그들의 노력들을 유보하도록 결정할 수 있다; 그들은 신성한 계시 안에서 진보하고 그것을 달성하는 것에 실패할 수 있다. 그러나 내주하는 생각조절자의 존재와 영향 때문에, 영적으로 진보하지 못하는 그러한 태도들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 




196 :3.15(2095-2)

내주하는 신성한 실체에 대한 심오한 체험은 물리적 자연 과학들의 조잡한 물질주의적 방법을 언제까지나 초월한다. 너희는 영적 기쁨을 현미경 아래에 놓고 볼 수는 없다: 너희는 사랑을 저울에 달 수 없다: 너희는 도덕적 가치들 측량할 수 없다: 또한 영적 경배의 본질특성을 평가할 수 없다. 




196 :3.16(2095-3)

히브리인들은 도덕적으로 절정에 달한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미(美)의 종교를 발전시켰다; 바울과 그의 의논 상대자들은 신앙, 소망, 그리고 박애의 종교를 기초하였다. 예수는 사랑의 종교: 아버지의 사랑 안에서의 보호, 인간 형제신분의 봉사에 이 사랑을 나누는 결과로 얻어지는 즐거움과 만족을 보여주었고 예시하였다. 




196 :3.17(2095-4)

사람은 사려 깊은 도덕적 선택을 할 때마다, 그는 그의 혼 속에 새로운 신성한 침투를 즉시 체험한다. 도덕적 선택은 종교를 외부의 조건들에 대한 내적인 반응의 동기로 형성한다. 그러나 그러한 참된 종교는 순전히 주관적인 체험은 아니다. 그것은 전체적인 객관성-우주와 그 조물주-에 대한 의미 있고 그리고 지능적인 반응에 몰두되어 있는 개별존재 주관성의 총체를 의미한다. 




196 :3.18(2095-5)

사랑하고 사랑받는 절묘하고 초월적인 체험은, 너무 순수하게 주관적이라고 해서, 단순히 심리적 환상은 아니다. 필사 존재들과 연합되어 있는 어떤 진실로 신성하고 객관적인 실체, 생각조절자는 배타적인 주관적 현상으로서 명백하게 인간 관찰에 대하여 기능하고 있다. 가장 높은 객관적 실체, 하느님과 사람의 접촉은 오직 그를 알고, 그를 경배하고, 그와의 아들관계를 깨닫는 순수한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196 :3.19(2095-6)

진정한 종교적 경배는 자아를-스스로 속이는 헛된 혼자만의 독백이 아니다. 경배는 신성하게 실제적인 것, 실체의 바로 그 근원과의 개인적 교제이다. 사람은 경배로서 더 나아지기를 갈망하며 그리고 그것에 의하여 결국에는 최상에 이른다. 




196 :3.20(2095-7)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에 대한 이상화(理想化)와 시도되는 봉사는 순수한 종교 체험,─영적(靈的) 실체─의 대용품이 아니다. 심리학과 이상주의는 종교적 실체와 동등한 것이 아니다. 인간 지성의 구체적 투사 활동들이 거짓의 하느님들─사람 형상의 하느님들─을 창작하였다, 그러나 참된 하느님을-의식함은 그러한 기원(起源)을 가지지 않는다. 하느님을-의식함은 내주하는 영 속에 살고 있다. 사람의 종교 체계들 대부분은 인간 지능이 꾸며서 갖춘 것에서 왔다, 그러나 하느님을-의식함은 종교적 노예제도의 이러한 우스꽝스러운 체계들의 일부가 될 필요가 없다. 




196 :3.21(2095-8)

하느님은 단순히 사람의 이상주의의 창안이 아니다; 그는 모든 이러한 초(超)동물적인 통찰력들과 가치들의 바로 그 근원이다. 하느님은 인간들의 진, 선, 미의 개념을 통합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설이 아니다; 그는 그로부터 모든 이 우주적 현시들이 기원된 사랑의 개인성이다. 인간 세상의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은 낙원천국의 실체들을 향하여 상승하는 필사자들의 체험의 증가하는 영성(靈性)에 의해 통합된다.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의 합일은 오로지 하느님을-아는 개인성의 영적 체험 속에서만 실현될 수 있다.




196 :3.22(2096-1)

도덕은 조절자의 내적 현존에 대한 개인적 인식인, 개인적인 하느님-의식에 꼭 필요한 선재하는 토양이다, 그러나 그러한 도덕은 종교적 체험과 결국 생겨나는 영적 통찰력의 근원은 아니다. 도덕의 본성은 초(超)동물적이다 그러나 영에 종속적이다. 도덕은 의무의 인식, 옳고 그른 실재에 대한 깨달음과 동등하다. 모론시아가 개인성 달성의 영적 영역과 물질 영역사이에서 작용하듯이 도덕의 범주는 동물과 인간 유형의 마음 사이에 개입한다.




196 :3.23(2096-2)

진화하는 마음은 법과 도덕과 윤리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증여된 영, 내주하는 조절자는 진화하는 인간 마음에게 입법자, 진실되고, 아름답고, 선한 모든 것의 아버지-근원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러한 계몽된 사람은 종교를 가진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길고도 모험적인 추구를 시작하도록 영적으로 장비가 갖추어져 있다. 




196 :3.24(2096-3)

도덕은 영적일 필요가 없다; 그것은, 아마도 전적으로 순전히 인간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모든 도덕적 가치들을 높이고 그들을 좀더 의미 있게 만든다. 종교가 없는 도덕은 궁극적 선을 나타내는데 실패한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그 자체의 도덕적 가치들의 생존을 준비하는데도 실패한다. 종교는 도덕이 인식하고 인정한 모든 것의 향상, 찬미, 그리고 확실한 생존을 제공한다.




196 :3.25(2096-4)

종교는 과학과 예술과 철학과 윤리와 도덕 위에 있지만, 그들과 무관하지는 않다. 그들은 모두 개인적이거나 사회적인 인간 체험 속에서 서로 확고하게 연관되어 있다. 종교는 필사자 본성 안에서 사람의 최극 체험이다, 그러나 유한한 언어는 신학이 실제 종교 체험을 적절하게 서술하는 것을 언제까지나 불가능하게 한다.




196 :3.26(2096-5)

종교적 통찰력은 패배를 더 높은 욕망과 새로운 결의로 전환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우주 상승 시에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동기이다. 그러나 진리(眞), 아름다움(美), 선(善)을 벗어 버린 사랑은 단지 하나의 감상이며, 철학적 왜곡, 심리적 착각, 영적 기만이다. 사랑은 모론시아와 영적 진보의 연속되는 차원들에서 항상 다시 정의(定意)되어야 한다.




196 :3.27(2096-6)

예술은 사람이 물질적 환경 속에서 미(美)의 결핍으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시도의 결과이다; 그것은 모론시아 차원으로 향한 몸짓이다. 과학은 물질적 우주의 명백한 수수께끼들을 풀려는 사람의 노력이다. 철학은 인간의 체험을 통일하려는 사람의 시도이다. 종교는 사람의 최극 몸짓, 최종의 실체를 향한 그의 장엄한 기지개, 하느님을 발견하고 그와 같이 되려는 그의 결심이다. 




196 :3.28(2096-7)

종교 체험의 영역에서는 영적 가능성이 잠재적 실체이다. 사람의 앞으로 나아가는 영적 충동은 심리적 환상이 아니다. 우주에 대한 사람의 모든 낭만적인 이야기는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그러나 많은 것이, 참으로 많은 것이 진실이다




196 :3.29(2096-8)

어떤 사람들의 삶은 단지 성공적이었다는 낮은 차원으로 내리기에는, 너무나 위대하고 고상하다. 동물은 그 자신을 환경에 적응시켜야만 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사람은 그의 환경을 초월하고 그리고 이 방법으로 신성한 사랑의 이 통찰력을 통하여 현재의 물질적 세상의 한계들을 탈출한다. 이 사랑의 개념은 사람의 혼 속에 진리(眞), 아름다움(美) 그리고 선(善)을 찾으려는 초(超)동물적 노력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가 그것들을 발견하면, 그는 그들의 품 안에서 영광스럽게 된다; 그는 그들을 살고 그리고 정의(正義)를 행하려는 열망으로 소진된다. 




196 :3.30(2097-1)

좌절하지 말라; 인간의 진화는 아직도 진행 중에 있으며, 그리고, 예수 안에서 그리고 그를 통하여,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계시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196 :3.31(2097-2)

현대인에게 가장 큰 도전이 되는 것은 인간 마음속에 거하는 신성한 관찰자와 좀더 나은 교제를 이룩하는 것이다. 육신에서의 사람의 가장 큰 모험은, 영-의식─신성한 현존과의 접촉─의 경계점에 도달하려는 전심의 노력으로 싹트고 있는 혼-의식의 희미한 영역을 통과하여 자아-의식의 경계들을 전진시키려는 균형이 잘 잡히고 정신이 올바른 노력 속에 있다. 그러한 체험은 하느님-의식, 하느님을 아는 종교적 체험의 선재하는 진리를 강력하게 확증하는 체험을 형성한다. 그러한 영-의식은 하느님과 아들관계의 실제성에 대한 지식과 동등하다. 그러한 것이 아니라면, 아들관계의 확신은 신앙의 체험이다.




196 :3.32(2097-3)

그리고 하느님을-의식함은 자아가 우주와 함께, 그리고 영적 실체의 가장 높은 차원에서 집대성을 이루는 것과 동등하다. 그 어떤 가치에서도 영적 내용만은 사멸될 수 없다. 인간의 체험에서도 진실하고, 아름답고, 그리고 선한 것은 사멸되지 않을 것이다. 만약에 사람이 생존하는 것을 선택하지 않으면, 생존하는 조절자가 사랑으로 태어나고 봉사 안에서 양육된 그 실체들을 보존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우주 아버지의 일부분이다. 아버지는 살아있는 사랑이며, 아버지의 이 생명은 그의 아들들 안에 있다. 그리고 아버지의 영은 그의 아들의 아들들─필사 사람들─안에 있다. 모든 것이 다 설명되고 완료된 지금, 아버지 관념은 여전히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가장 높은 개념이다.




출처 : http://urantian.kr/book/read_ub.htm 

[출처] 제196편 예수의 믿음|작성자 야베스

유란시아서 세부목차 (세부 항목) 
제1부 중앙우주와 초우주(Part I. The Central and Superuniverses)
0. 머릿말 (Foreword)............. 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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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의 아버지 The Universal Father........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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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버지의 이름 
2. 하나님의 실체 
3. 하나님은 보편적 영 
4. 하나님의 신비 
5. 우주의 아버지의 성격 
6. 우주의 성격자 
7. 성격 개념의 영적 가치

2. 하나님의 성품 The Nature of God.......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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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의 무한성 
2. 아버지의 영원한 완전 
3. 정의와 공의
4. 신의 자비 
5. 하나님의 사랑 
6. 하나님의 선하심 
7. 신성한 진리와 아름다움

3. 하나님의 속성 The Attributes of God........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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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심 
2. 하나님의 무한한 힘 
3. 하나님의 보편적 지식 
4. 하나님은 한계 없으심 
5. 아버지의 최상 통치 - 불가피한 것 
6. 아버지위 수위성 - 축복

4. 하나님과 우주의 관계 God's Relation to the Universe........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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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주에 대한 아버지의 태도 - 섭리 
2. 하나님과 자연 
3. 하나님의 변치않는 신격 (神格) 
4. 하나님을 깨닫는 것 
5. 하나님에 관한 그릇된 관념

5.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 God's Relation to the Individual........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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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께 다가가는 법 
2. 하나님의 계심 
3. 참된 예배 
4. 종교에서 하나님 
5. 하나님을 의식함 
6. 성격자의 하나님

6. 영원한 아들 The Eternal Son........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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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원한 아들의 신분 
2. 영원한 아들의 성품 
3. 아버지의 사랑이 베푸는 봉사 
4. 영원한 아들의 속성 - 전능, 두루 계심, 전지 
5. 영원한 아들의 한계 
6. 영(靈)의 정신(精神) 
7. 영원한 아들의 성격 
8. 영원한 아들의 현실화

7. 영원한 아들과 우주의 관계 Relation of the Eternal Son to the Universe........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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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영 인력 회로 
2. 영원한 아들의 행정 
3. 영원한 아들과 개인의 관계 
4. 완전하게 만드는 신의 계획 
5. 수여하는 영 - 영원한 아들의 수여, 최초의 미가엘의 여러 수여 
6. 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 
7. 아버지를 최상으로 계시하는 것

8. 무한한 영 The Infinite Spirit..................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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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4474452
1. 행동의 하나님 
2. 무한한 영의 성품 
3. 영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4. 신성하게 봉사하는 영 
5. 하나님의 계심 
6. 무한한 영의 성격

9. 무한한 영과 우주의 관계 Relation of the Infinite Spirit to the Universe.......
............신성한 조언자(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60401186165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4476195
1. 셋째 근원 중심의 속성 
2. 두루 계시는 영 
3. 우주의 조종자 
4. 절대 지성 
5. 지성이 베푸는 봉사 
6. 지성 인력의 회로 
7. 우주의 반영 
8. 무한한 영의 성격자 - 셋째 근원 중심의 기능적 가족

10. 파라다이스 삼위일체 The Paradise Trinity...................우주 검열자 (Universal Cens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9877852884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4477863
1. 첫째 근원 중심의 자기 분배 
2. 신의 성격화 
3. 세분의 신 
4. 신의 삼위일체 연합 
5. 신의 삼위일체 기능 - 유한자에 대한 태도, 초한자에 대한 태도, 절대적 태도 
6. 삼위 일체의 고정된 아들 - 응보, 증거, 심판 
7. 최상위의 전반적 통제 
8. 유한을 넘는 삼위 일체 - 인간 운명의 한계

11. 영원한 파라다이스 섬 The Eternal Isle of Paradise ..............지혜 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9604519578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2352
1. 신성한 거소 
2. 영원한 섬의 본질 
3. 위 파라다이스 
4. 가장자리 파라다이스 
5. 아래 파라다이스 
6. 공간의 호흡 - 무물(無物) 공간 
7. 파라다이스 공간 기능 - 중부 공간 지대 
8. 파라다이스 인력 - 물력, 에너지, 동력 
9. 파라다이스 독특성

12. 온 우주 The Universe of Universes..........지혜 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9124519626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3491
1. 모우주의 여러 공간 수준 
2. 무제한 절대자의 영토 
3. 우주의 인력 
4. 공간과 운동 
5. 공간과 시간 
6. 우주의 전반적 통제 
7. 부분과 전체 
8. 물질과 정신과 영 
9. 성격 실체

13. 파라다이스의 신성한 여러 구체 The Sacred Spheres of Paradise..............지혜 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8834519655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4663
1. 아버지의 신성한 일곱 세계 
(1) 신별 (2) 아들별 (3) 영별 (4) 대관별 (5) 단독이별 (6) 천사별 (7) 승천자별 
2. 아버지 세계들의 관계 
3. 영원한 아들의 거룩한 여러 세계 
4. 무한한 영의 여러 세계 - 으뜸 영들의 집행부 거처

14. 신성한 중앙 우주 The Central and Divine Universe.........지혜 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8471186358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5781
1. 파라다이스-하보나 체계 ? 파라다이스-하보나 표준일, 검은 인력체 
2. 하보나의 구조 
3. 하보나의 여러 세계 
4. 중앙 우주에서 사는 생물 
5. 하보나 생활 - 단조로움과 모험 
6. 중앙 우주의 목적

15. 일곱 초우주 The Seven Superuniverses.............우주 검열자 (Universal Cens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8071186398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6974
1. 초우주 공간 수준 
2. 초우주의 조직 
3. 오르본톤 초우주 
4. 성운?우주들의 선조 
5. 공간 물체의 기원 
6. 공간의 구체 
7. 건축된 구체 - 초우주 시간 
8. 에너지의 통제와 조절 
9. 초우주의 회로 - 지역 우주 회로 
10. 초우주 통치자 
11. 심의하는 집회 
12. 최고 재판소 
13. 구역 정부 
14. 일곱 초우주의 목적

16. 일곱 으뜸 영 The Seven Master Spirits............우주 검열자 (Universal Cens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941186411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8314
1. 삼자 일체 신과 가지는 관계 
2. 무한한 영과 가지는 관계 
3. 으뜸 영들의 신분과 다양성 
4. 으뜸 영의 속성과 기능 
5. 생물과 가지는 관계 
6. 우주 지성 - 원인 작용, 의무, 예배 
7. 도덕과 미덕과 성격 
8. 유란시아 성격 
9. 인간 의식의 실체

17. 일곱 최상의 영 무리 The Seven Supreme Spirit Groups.........신성한 조언자 (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851186420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49400
1. 일곱 최상 집행자 - 생물이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 
2. 장려자?반영의 우두머리 
3. 반영하는 영 
4. 반영 영상 보조자 
5. 일곱 회로의 영 
6. 지역 우주의 창조 영 
7. 보조 지성 영 
8. 최상 영들의 기능

18. 최상 삼위 일체 성격자 The Supreme Trinity Personalities..... 신성한 조언자
(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624519776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0906
1. 삼위 일체를 체험한 최상위의 비밀 
2. 늘 영원한 이 
3. 옛적부터 늘 계신 이 
4. 늘 완전한 이 
5. 요즘부터 늘 계신 이 
6. 늘 연합한 이 
7. 늘 충실한 이

19. 삼위일체 기원을 나란히 가진 존재 The Co-ordinate Trinity-Origin Beings.....
신성한 조언자 (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521186453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2075
1. 삼위일체 아들 교육자 
2. 지혜 완성자 
3. 신성한 조언자 
4. 우주 검열자 (삼위일체의 고정된 아들) 
5. 영감 받은 삼위 일체 영 
6. 하보나 원주민 
7. 파라다이스 시민

20. 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 The Paradise Sons of God..........
지혜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434519795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3282
1. 내려오는 하나님의 아들 
2. 아들 행정관 
3. 사법 행위 
4. 행정관 임무 
5. 하나님의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수여 
6. 필사자로 수여하는 생애 
7. 삼위일체 아들 교육자 
8. 데이날의 지역 우주 직분 
9. 데이날이 혹성에 베푸는 봉사 
10. 파라다이스 아들들의 연합된 직책

21. 파라다이스 아들 창조자 The Paradise Creator Sons..........
지혜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231186482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4523
1. 아들 창조자들의 기원과 성품 
2. 지역 우주의 창조자 
3. 지역 우주의 통치권 
4. 미가엘의 수여 
5. 주 아들과 우주의 관계 
5. 주 미가엘의 운명

22. 삼위 일체를 체험한 하나님의 아들 The Trinitized Sons of God............
막강한 사자 (Mighty Messenge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121186493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5730
1. 삼위 일체가 품었던 아들 - 삼위 일체를 체험한 달성의 아들, 
삼위 일체를 처험한 선택의 아들, 삼위 일체를 체험한 완전의 아들 
2. 막강한 사자 
3. 고등 권한자 
4. 무명 무수자 
5. 삼자 일체화를 체험한 관리자 
6. 삼자 일체화를 체험한 대사 
7. 삼자 일체화 기법 - 승천자가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 
파라다이스-하보나 주민이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운명의 아들 
8. 생물이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 
9. 천상의 보호자 
10. 높은 아들 조력자

23. 외톨 사자 The Solitary Messengers......... 신성한 조언자 (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7004519838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57044
1. 외톨 사자의 성품과 기원 
2. 외톨 사자의 임무 
3. 외톨 사자의 시공 근무 - 천사의 속도와 기타 공간 속도 
4. 외톨 사자의 특별한 봉사 -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운명의 아들

24.무한한 영의 고등 성격자 Higher Personalities of the Infinite Spirit.......
신성한 조언자 (Divine Counsel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901186515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65714
1. 우주 회로 감독자 
2. 인구 조사 지휘자 
3. 무한한 영의 개인 보조자 
4. 부 검열자 
5. 지정된 파수 
6. 졸업생 안내자 - 그랜드판다, 첫 승천자 
7. 졸업생 안내자의 기원

25. 공간의 사자 무리 The Messenger Hosts of Space.......... 고등권한자 (One High in Authority)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644519874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67055
1. 하보나 일꾼 
2. 우주 화해자 
3. 화해자의 두루 미치는 봉사 
4. 기술 고문 
5. 파라다이스 기록 관리자 
6. 하늘 기록자 
7. 상물질 (모론시아)계 동반자 
8. 파라다이스 동반자

26. 중앙 우주에서 봉사하는 영 Ministering Spirits of the Central Universe..........
지혜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417853230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68681
1. 봉사하는 영 - 중앙 우주, 초우주, 지역 우주의 봉사하는 영 
2. 막강한 상천사 
3. 3차 상천사 - 조화 감독자, 우두머리 기록자, 방송자, 사자 
정보 조정자, 수송 성격자, 예비군 
4. 2차 상천사 - 승천자가 하보나에 도착함 
5. 순례자의 조력자 
6. 최상위 안내자 
8. 아들 탐지자 - 신을 발견하는 데 실패하는 것 
9. 아버지 안내자 
10. 삼담자와 고문 - 실패한 후보자의 배치 
11. 휴식 보충자 - 생물이 삼자 일체 체험으로 낳은 아들

27. 1차 상천사의 봉사 Ministry of the Primary Supernaphim.......... 지혜완성자 (Perfector of Wisdom)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327853239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70009
1. 휴식 선동자 - 휴식의 성질 
2. 배치장 
3. 윤리 해석자 
4. 행종 지도자 
5. 지식 보관자 
6. 철학의 대가 
7. 예비 지휘자

28. 초우주의 봉사하는 영 Ministering Spirits of the Superuniverses.........
막강한 사자 (Mighty Messenge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244519914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71565
1. 3품 천사 
2. 전천사 
3. 2품 천사 
4. 1차 2품 천사 
(1)합동 행위자의 목소리 (2) 일곱 으뜸 영의 목소리 (3) 아들 창조자들의 목소리, 
(4)천사 무리의 목소리 (5)방송 수신자 (6)수송 성격자 (7)예비군 
5. 2차 2품 천사 
(1)지혜의 목소리 (2)철학의 혼 (3) 혼의 연합 (4)조언의 가슴, 
(5)존재의 기쁨 (6) 봉사의 만족 (7) 영 분별자 
6. 3차 2품 천사 
(1)기원의 의미 (2) 자비의 기억 (3) 시간의 중요성 (4) 신뢰의 엄숙, 
(5) 봉사의 고결 (6) 위대함의 비결과 선한 혼 
7. 2품 천사의 봉사

29. 우주 동력 지휘자 The Universal Power Directors.......... 우주 검열자 (Universal Censo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6154519923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72910
1. 일곱 최상 동력 지휘자 
2. 최상 동력 중심 
(1) 최상 중심 감독자 (2) 하보나 중심 (3)초우주 중심 (4) 지역우주 중심 
(5) 별자리 중심 (6) 체계 중심 (7) 분류되지 않은 중심 
3. 동력 중심의 영토 
4. 물리 주 통제자 
(1) 동력 부지휘자 (2) 기계적 통제자 (3) 에너지 변압자 (4) 에너지 발송자 
(5) 1차 결합자 (6) 2차 분리자 (7) 프란달랑크 크로놀덱 
5. 물력 주조직자 
궁극에 이른 1차 물력 주조직자, 초월물력 부조직자

30. 대우주의 성격자 Personalities of the Grand Universe........... 막강한 사자 (Mighty Messenge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5994519939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74329
1. 살아 있는 존재들에 관한 파라다이스 분류 
Ⅰ. 삼위의 기원을 가진 존재 
Ⅱ. 2중 기원 존재 
Ⅲ. 단일 기원 존재 
Ⅳ. 궁극에 이른 초월 존재 
Ⅴ. 신의 분신이 된 통일체 
Ⅵ. 초월 성격 존재
2. 유버르사 성격자 등록 
Ⅰ. 파라다이스 신 
Ⅱ. 최상의 영 
Ⅲ. 삼위일체 기원의 존재 
Ⅳ. 하나님의 아들 
Ⅴ. 무한한 영의 성격자 
Ⅵ. 우주 동력 지휘자 
Ⅶ. 영구 시민 군단, 복합 성격자 무리
3. 우대 거류민 
(1) 별 연구자 (2) 하늘 예술자 (3) 복귀 지도자 (4) 연장 학교 강사, 
(5) 다양한 예비군 (6) 학생 방문자 (7)하늘 가는 순례자
4. 하늘 가는 필사자 
(1) 혹성의 필사자 (2) 잠자는 생존자 (3) 저택 세계 학생 (4) 상물질계 진보자
(5) 초우주의 피보호자 (6) 하보나 순례자 (7) 파라다이스에 도착한 자

31. 최후 군단 The Corps of the Finality...........무명무수자(One Without Name and Number)
Korea : https://ko-kr.facebook.com/jnk0212/posts/821955907853281
English : http://blog.naver.com/jnk0212/220266475654
1. 하보나 원주민 
2. 인력 사자 
3. 영화롭게 된 필사자 
4. 입양된 세라핌 
5. 영화롭게 된 물질 아들 
6. 영화롭게 된 중도인 
7. 빛의 전도사 
8. 초월자 
9. 모우주 건축가 
10. 궁극의 모험

출처 :유란시아 한국
http://www.urantia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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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제4부.
예수의 일생과 가르침 (PART IV. The Life And Teachings Of JESUS) 
https://youtu.be/4tdPpJcw4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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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란시아서 제3부.
유란시아의 역사 (PART III. The History of Urantia) 
https://youtu.be/m9J3vXZk1o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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