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자훈련 사역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는... "우리가 너무 획일적인 훈련은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너무 다양하게 만드셨고, 다양하게 인도하고 계시는데... 더불어 사람들의 영적인 상황이나 환경이 서로 다른데... 

물론 기본 틀은 있어야겠지요. 하지만 그런 기본적인 틀 안에서 다양한 변화들을 줄 수 있어야 하는데... 너무 고정되어 있고 획일화 되어 버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ㅎㅎㅎ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나요? 

하나님께 질문하기  

묵상한 말씀 : 사사기 6:11~24 
나에게 주시는 말씀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 또 우리 조상들이 일찍이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나이다 하니" (15절) 

하나님이 미디안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위해 한 사람을 택하신다. 그 사람은 바로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많은 사람들 중에 왜 기드온이라는 사람을 택하셨을까? 오늘 본문을 통해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과 갈등, 질문이 있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기드온이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서 가장 약하고 작은 자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15절). 두 번째 이유는 많이 알려진 것이고 많이 다루었기 때문에 깊이 묵상하지 않으려고 한다. 오늘은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 더 깊이 묵상해 보려고 한다.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13절을 보면 자기 앞에 나타난 여호와의 사자를 향해서 다짜고짜 여러 질문들을 던진다. 그 질문들의 내용은 '정말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는가? 출애굽할 때 있었다는 하나님의 기적과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자를 만나자마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자마자 터져 나오는 질문들은 이스라엘 가운데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향한 질문들이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향한 원망일수도 있다. 하나님을 향한 분노와 의문일수도 있다.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지… 역사하고 계신지…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고 있는 일들을 알고는 계신지… 관심이 있으신지… 왜 버리셨는지… 왜 이런 고통과 아픔을 허락하시는지… 기드온은 그 동안 마음 속에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을 하나님을 향해 쏟아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기드온을 책망하시거나 믿음이 없다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우리는 한 가지 잘못된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도마 사건에서 비롯된 것인데,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과 의문을 가지는 것을 '불신'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신다. 그것을 믿음 없다고 책망하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는 자들을 부르시고 사용하신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기드온인 것이다. 

지난 칠년 동안 미디안에 의해 괴롭힘과 학대를 당하는 민족의 현실과 아픔을 보면서, 하나님을 향해 질문하고 질문하였던 기드온을 하나님은 보시고 계셨다. 그 마음에 있던 갈급함과 간절함을 하나님은 아셨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기드온을 부르고 계신다. "왜 침묵하고 계십니까? 왜 아무런 기적과 능력도 베풀지 않고 계십니까?"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그 질문을 했던 기드온을 부르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그런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오는 자들을 찾으신다. 이 시대의 아픔과 이 민족과 열방의 상황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질문하는 자들을 찾으신다. 어떤 능력과 재주, 학벌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깨어진 마음으로 하나님을 향해서 질문하고 있는 자들을 찾으신다. 그가 비록 소심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그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자. 조국 교회의 아픔과 현실을 가지고 하나님께 계속 질문하고 또 질문하자. 아무런 능력도 힘도 없는 교회의 현실을 보며 하나님께 묻고 또 묻도록 하자. 하나님 정말 살아계시냐고… 지금도 능력으로 역사하실 수 있느냐고… 왜 부르짖는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느냐고… 따지고 또 따지자. 

"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하여금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에서 찾다가 찾지 못하였으므로" (겔 22:30)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야성의 회복
묵상한 말씀 : 사사기 3:1~11 
나에게 주신 말씀 : “여호와께서 가나안의 모든 전쟁들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 자손의 세 대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은… 남겨 두신 이 이방 민족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를 통하여 그들의 조상들에게 이르신 명령들을 순종하는지 알고자 하셨더라”(1~2, 4절)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 그리고 그들을 시험하시기 위해 남겨 두신 이방 민족들… 하나님은 그 상황을 통해서 다음 세대 가운데 전쟁을 가르치기 원하셨으며, 동시에 그들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순종하는지를 시험코자 하신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가나안 전쟁은 단순한 정복 전쟁이 아니다. 땅이 없고 거처가 없기 때문에 빼앗아서 차치하기 위한 정복 전쟁이 아닌 것이다. 가나안 전쟁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를 세워 온 열방과 민족들을 축복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자 뜻인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 이루어가는 삶, 세상의 죄악들과 싸워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것을 가르치기 원하셨고, 그런 야성을 당신의 백성들이 잃어버리지 않기를 기대하셨다.

하지만 그런 하나님의 기대와는 전혀 반대로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도 쉽게 그리고 빠르게 이방 족속들의 문화에 동화되어 버린다. 그들의 죄악들을 받아들여 함께 우상 앞에 절을 하며 하나님을 잊어 버린다(6~7절).

너무도 쉽게 타락해 버렸다. 너무도 쉽게 그들의 문화와 죄악들을 받아 들인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싸우길 원하신다. 하나님을 위한 '거룩한 전쟁'을 감당할 수 있는 군대들이 되길 원하신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그것이 교회와 우리들의 부르심이다. 용사로, 군대로 우리를 부르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들 안에, 내 안에 '야성'을 잃어버린 것 같다. 얼마나 자주 현실에 안주하며 편안한 삶을 살고 싶어하는지… 힘들고 어려운 개척보다는 과거에 이루어 놓은 성공과 명성, 조직 안에 숨어서 만족해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 제주도에서 함께 교회를 개척했으면 좋겠다는 한 형제님의 제안을 받고 1년 가까이를 고민했다. 육지에서도 이젠 교회 개척은 힘들다, 교회 개척의 시대는 지났다는 말들이 들려올 정도인데… 어떻게 가장 힘들고 어렵다는 제주도에 교회 개척을 하라는 것인지… 부인하고 거부하면서 1년 가까이 시간을 끌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저히 도망갈 수 없는 상황들을 만드셨고, 결국 복음자리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다. 지난 1년 6개월의 시간들을 뒤돌아 보면 내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진짜 하나님이 하셨다. 하나님이 친히 그 모든 것을 이루셨다.

그 시간들을 통해 깨닫는 것은 오직 하나이다. 내 안에 얼마나 불순종이 많은지… 또한 야성을 잃어버리고 세상에 얼마나 많이 길들여 있는지를 발견한 것이다. 두려움과 염려, 근심과 걱정에 사로잡혀 믿음으로 결정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용기와 도전은 다 사라져 버렸고, 오직 안전이라는 욕구 하나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삶의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아침… 하나님은 다시 도전하신다. 하나님의 용사로서 야성을 가지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위한 전쟁을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신다. 담대하게 나가서 싸우라고 하신다. 계속해서 벼랑 끝에 서라고 하신다. 믿음의 번지 점프를 해 보라고 하신다. 도전해 보라고 하신다. 담대하게 믿음의 발을 내딛어 보라고 하신다. “주님 저에게 다시 잃어버린 야성을 회복할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오. 주님을 신뢰함으로 두려움과 직면하겠습니다. 용기를 낼 수 있도록 힘을 주십시오. 아멘”

Division(분열, 경계라는 의미)
묵상한 말씀 : 사사기 2:11~23 
나에게 주시는 말씀 :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14~15절)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들을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가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거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욱 타락하여 다른 신들을 따라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고 그들의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18~19절) 
“이는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을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여호와께서 그 이방 민족들을 머물러 두사 그들을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셨으며 여호수아의 손에 넘겨주지 아니하셨더라”(22~23절)

어제 사랑의 교회 소식을 듣고 마음이 답답하고 아팠다. 옥한흠 목사님이 소천하신지 3년… 하지만 그 이후로 들려오는 사랑의 교회 소식들은 소망이나 기쁨보다는 실망과 좌절, 답답한 소식들이었다. 비단 사랑의 교회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조국 교회 전반적인 문제이고 아픔이다.

1970년 이후… 조국 교회를 이끌던 영적 지도자들이 한 분… 한 분… 떠나가시고, 이제 조국 교회는 내리막을 달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마치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여호수아의 시대가 지나고 사사 시대가 시작되면서 우상숭배 등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진노하셔서 주변에 있던 이방 족속들을 통해 그들을 심판하신 것처럼, 지금 조국 교회는 사회적인 지탄과 조롱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조국 교회를 향한 비판과 심한 저주의 목소리가 넘쳐나고 있다. 더 이상 목사, 장로, 권사는 존경의 대상이 아니다.

오늘 본문에 그려진 사사 시대의 모습이 2013년 조국 교회의 현실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 마음이 답답하고 아프다.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고 헤쳐나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하다. 소망을 생각하고 긍정스러운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만 과연 미래에 소망이 있는지 의문스럽기만 하다.

그런데 주님은 22절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그 남은 민족을 이용해 이스라엘이 그들의 조상이 여호와의 길을 지켰던 것처럼 과연 그 길을 택해서 지킬 것인지 아닌지를 시험하고자 한다.”(우리말성경)

가나안 땅 가운데 이방민족들이 남게 된 것은 철저하게 이스라엘의 불순종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들을 몰아내지 않겠다고 말씀하신다(21절). 더 나아가 몰아내지 않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심판의 막대기로 사용하시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의 또 다른 의도를 발견할 수 있다.

그 남은 가나안 족속들로 인해 고통을 당하고 어려움을 당하게 하는 것이 심판이기도 하지만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 상황을 통해 하나님은 계속해서 한 가지를 시험(test)하신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것인지, 불손종하는 삶을 살 것인지를 구분하고 분별해 내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고통의 원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온전히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한다면 하나님은 그 가운데 놀라운 능력과 구원을 행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불순종한다면 그 상황 속에서 멸망당할 수 밖에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상황을 통해 알곡과 가라지를 구분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양과 염소가, 순종하는 자와 불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진짜 예배하고 섬기는 자와 가짜로 섬기고 예배하는 자가 누구인지 드러나고 분별되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조국 교회가 당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통해서 하나님은 진짜 하나님의 사람들과 주님의 몸된 공동체가 누구인지 가려내시길 원하시는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떠한가? 계속해서 순종의 길을 걷고 있는가? 여전히 불순종의 길에 서 있는가? 죄악된 길에서 돌이켜서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주님을 따르고 있는가? 오늘 하루 종일 주님 앞에서 내 자신을 점검해 보고 싶다.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유산

묵상한 말씀 : 사사기 2:1~10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백성이 여호수아가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일을 본 자들이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그 세대의 사람도 다 그 조상들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7, 10절)

오늘 말씀 묵상을 시작하자마자 나에게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아는 자들이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지 못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없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기 못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성품)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행위, 원리) 아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다면, 여호수아와 그 장로들이 죽은 후에 일어난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말인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들의 과거 역사 가운데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전혀 몰랐다는 말인가? 출애굽과 광야생활, 그리고 가나안 정복의 모든 시간들 가운데 함께 하시고 역사하신 하나님을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고, 어떤 분이신지 알지도 못했다는 말인가?

그런 의미는 아니다. 여기서 알지 못했다는 것은 경험적이고 체험적으로, 삶속에서, 개인적이고 실제적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했다는 의미인 것이다. 그들에겐 율법도 있었고, 성막도 있었고, 여러 제사(예배)도 있었다. 과거 하나님이 어떤 일들을 하셨는지 유월절과 초막절과 칠칠절 등 다양한 절기를 통해서 듣고 또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경험한 하나님은 아니었다. 여호수아의 하나님이고, 여러 장로들의 하나님이고, 부모의 하나님이었다. 앞 세대의 하나님이었다. 더욱이 가나안 정복 과정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지 못했고,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이끄시는 경험을 깊이 하지 못한 세대의 영향을 받아 자란 사람들이었기에 더더욱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경험하거나 배울 수 없었다.

우리는 자주 착각을 한다. 우리 자녀들에게 지식을 많이 전달하고 가르치면 하나님을 알 것이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것이라고... 하지만 머리로 아는 것은 진짜 아는 것이 아니다. 머리로 안다고 삶이 그렇게 이끌려 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주일학교 출신이다. 6살 때부터 성실하게, 한 번도 빠지 않고 주일학교를 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지식들을 배웠다. 하지만 여전히 무섭고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이었다. 저 멀리 계시는 하나님이었다.

그런데 21살 때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입학하면서 말씀을 묵상하는 것과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대화하고 동행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배우면서 신앙의 큰 전환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어쩌면 주일학교를 다닌 12년보다 1년 동안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을 경험한 것이 나의 삶에 더 큰 영향을 주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머리로 하나님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삶으로/경험적으로 하나님을 배워가고 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 세대에 무엇을 물려줄 것인가?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네 딸들에게 무엇을 전수할 것인가? 새롭게 시작한 복음자리 공동체 가운데 여러 자녀들이 있다. 그들에게 어떻게 하나님을 경험하고 바르게 알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가? 그 어떤 것들보다 나에게 가장 큰 숙제인 것이다. 아빠와 엄마의 하나님으로 끝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앞 세대의 하나님으로 멈추어 버리지 않기를 기도한다.

그러기 위해 내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벼랑 끝에 서는 삶을 살기 원한다.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원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내 삶을 온전히 드리는 모험을 즐기길 원한다. 하나님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것이 무엇인지 삶으로 증거하길 소망한다. 그래서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증거되어지고, 다음 세대에 전수되어지길 기도한다. 간절히...

온전한 순종

묵상한 말씀 : 사사기 1:22~36
나에게 주시는 말씀 : "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음들의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이스라엘이 강성한 후에야 가나안 족속에게 노역을 시켰고 다 쫓아내지 아니하였더라" (27~28절)

하나님은 신명기 7장 1절 이하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이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라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하지만 요셉 가문의 족속들은 그들을 완전히 쫓아내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함께 거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보면 다음과 같은 표현이 반복되고 있다.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 가나안 족속들은 요셉 가문의 족속들이 자신들을 완전히 쫓아낼 의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결심을 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던 것이다.

이것을 보면 당시 요셉 가문의 족속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현실 사이에서 타협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완전히 진멸하고 불쌍히 여기지 말라고 하셨지만, 요셉 가문의 족속들은 그것을 적당히 지키는 것으로 마음에 결정을 한 것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대로 그 땅을 차지했고, 가나안 족속들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지 힘들게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는 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을 한 것이다.

이 결정은 역사적으로 보면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커다란 걸림돌로 작용한다. 당장은 커다란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시간이 흘러가면서 가나안 족속의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그들의 타락한 문화와 우상숭배의 죄악들이 들어오게 되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게 되었고 다시 가나안 족속들의 지배를 받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적당히 타협하는 것... 인간의 기준과 생각으로 "이 정도 했으면 괜찮아! 최선을 다했어! 만족해!"라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세상이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람들보다 더 강력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안에 있는 불순종과 적당하게 타협하려는 마음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 성령님의 능력이 세상보다 작거나 약한 것이 아니라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우리들 때문에 더 이상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침묵하고 계신다고 생각한다. 더 이상 역사하지 않으신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 이미 말씀하신 하나님의 명령과 진리에 나의 삶을 온전히 드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전한 순종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곳(수준)까지 달려가는 수고가 없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피곤하고 힘들게 그들과 싸움을 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 불순종과 타협함이 문제인 것이다.

끝까지 순종하자. 나의 수준이나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훈련하고 배우자. "주님! 제가 문제입니다. 저의 불순종이 문제이고,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적당히 순종하려는 저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제 안에 하나님의 뜻이 저의 삶과 사역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기까지 멈추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것을 보고싶은 열정과 갈망을 부어주십시오. 예! 제가 계속해서 달려가겠습니다. 끝까지 순종하겠습니다. 아멘!"

죠지 뮬러가 소개하는 7가지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

1. 말씀을 정기적으로 묵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자주 발견하곤 했다.
말씀이 고아원 사역에 기둥이 되었고
그 길에 빛이 되었다.

2. 기도를 통하여 성령의 내적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하여
성급히 자기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
"주님의 뜻인지?" 묻는 습성 대신에
언제나 먼저 성령님 앞에 나아가
무릎 꿇고 기도로 물어 보았다.
아침에도 저녁에도 매순간 물어 보았다.
성령님은 가까이 임재하여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셨다.
기도할수록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

3. 성령이 주시는 내적 평강을 소중히 여긴다

사람이 보기에 아무리 합당하고
좋은 일이라도 심령 깊은 곳에
성령의 평강이 임하지 않고 의심이나 불안이
발견되면 계획했던 일을 추진하지 않고 기다린다.
그런 후 평강이 임하면 일을 추진했다.

4.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동기를 면밀히 점검 받는다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그 동기를 자주 기도 가운데 살펴본다.
그 목적이 하나님 앞에 합당한가를 면밀히 검토한다.
혹시 자신의 심중에 극히 작은 부분일지라도
욕심의 그림자가 있으면 그 것을 먼저 제거한 후에 일을 추진하였다.

5. 주님 한 분만을 의뢰하며 바라본다

갑자기 곤경에 처하는 위기를 만날 때에도
세상적인 방법을 포기하고 대신에 여호사밧처럼 주 하나님만 바라보았다.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역대하 20:12 하

그리고 기도한대로 오늘 하루를 무사히 도와주시리라고 확신했다.
주님께서는 필요한 물품을 기적처럼무사히 공급해 주셨다.

6. 성령안에서 일을 진행해 나간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것은 성령안에서 가능했다.
성령을 매우 가까이하며 성령의 지배를 받으며 성령안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이루어 드리는데 큰 도구로 쓰임을 받는 것이다.

7. 하나님의 손길을 주의 깊게 바라본다

하나님은 요술을 부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때때로 인간에 처한 환경을 다스리시고
그 인생을 이끄시는 분이시다.
때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치 않을 때는
환경을 통하여 막으시는 경우도 있었다.
환경을 변화시키고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늘 바라보았다
기도의 응답에 승리했던 사람들은
응답의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음과 인내와 신뢰로 기다린 사람들이다.

루비 캔드릭(Lubye Rachael Kendrick, 1883.1.28~1908.8. 8.15)

조선에 온지 9개월만에 병으로 순교한 캔드릭 선교사의 편지... 눈물이 많이 나서 혼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 곳 조선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 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저는 복음을 듣기 위해 20킬로미터를 맨발로 걸어 오는 어린아이들을 보았을 때 그들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오히려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저께는 예수님을 영접한 지 일주일도 안된 서너명이 끌려가 순교했고, 토마스 선교사와 제임스 선교사도 순교했습니다. 선교본부에서는 철수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그들이 전도한 조선인들과 아직도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가 순교를 할 작정인가 봅니다. 오는 밤은 유난히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외국인을 죽이고 기독교를 증오한다는 소문 때문에 부두에서 저를 끝까지 말리셨던 어머니의 얼굴이 자꾸 제 눈앞에 어른거립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 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 하겠죠?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조선 땅에는 많은 꽃들이 피고 그들도 여러나라에서 씨앗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제가 조선을 향해 가지는 열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조선을 향해 가지신 열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시22:3)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시22:27)

예배의 두 가지 기둥 
1. 하나님의 임재 
2.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 

우리의 예배/찬양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가? 우리의 예배 안에 열방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는가?  

오늘 선교 강의를 들으며... 

선교를 위해 헌신된 삶을 살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세 가지!(예수님이 받느신 세 가지 시험을 통해)

1. 돌이 떡이 되게 하라는 시험을 통해... 인본주의! 
2. 자기에게 절하라는 시험을 통해... 세속주의!
3. 성전에서 뛰어 내리라는 시험을 통해... 영웅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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