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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heingang (스케치북)

책에서도 밝힌 내용이지만, 독일인을 한 문장으로 설명한다면 '알레스 인 오(르)드눙Alles in Ordnung?'일 거다. 직역은 '모든 게 정리돼 있는가?' 정도인데, 보통 "괜찮아요?" 할 때 쓰인다. 독일은 모든 게 이 문장으로 설명된다.

3:27 PM Sep 6th via Twitter Web Client
https://twitter.com/rheingang/status/640410873920667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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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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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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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그룹 회장의 비서실장을 수년간 지낸 사람의 말이다.

“회장님은 직원이 병원에 입원하거나 사망이라도 하면 해당 부서장을 호출합니다. 그리고 지갑에서 현금(수표)을 전부 꺼내 주면서 직원을 위로하라고 말하지요. 물론 돈이 얼마인지 세어 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회장님이 세지 않고 건네 준 현금이 얼마의 금액인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회장님이 직원 격려 등으로 수표를 사용하면 비서실에서 다시 정해진 금액을 보충해 드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회장님에게서 현금을 세지 않고 받은 부서장들의 행동은 같지 않다는 것이 비서실장의 경험이다.
다수의 부서장은 비서실장에게
“어제 회장님이 주신 돈으로 가족을 위로하고, 장례까지 잘 마쳤습니다”
라고 보고하는 것으로 끝이다. 그런데 일부 부서장의 보고는 좀 다르다.
“어제 회장님이 450만원을 주셨는데, 병원비에 300만원, 장례비에 95만원을 지원하고, 55만원이 남았습니다”
라고 하며 영수증과 함께 남은 돈을 반납한다.

비서실장인 나는 전달받은 그대로 회장님께 보고 드리며, 그 때 회장님은 “그 친구 참, 철저하구만…”하고 웃고 만다. 하지만 이 순간이 그가 장차 임원 승진 후보자로서의 1차 관문을 통과한 것과 다름없었다. 위로금 전달이라는 작은 일 처리를 보고 회장님은 그 사람의 신뢰도를 측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회장의 마음속에는“철저한 사람”으로 신뢰를 얻은 사람이 한 두 명이 아니다. 따라서 누가 다음에 임원으로 승진을 하느냐는 것은 알 수 없다. 그런데 비서실장의 눈에 이상하게 보이는 것은 차기 임원 승진심사 때가 되면 신뢰를 얻어 1차 관문에 통과된 사람들을 거의 탈락시킨다는 점이다.

그리고 3개월쯤 지난 후에 “그 사람 요즘 어찌 지내? 한번 알아 봐”하고 비서실장에게 지시한다.
비서실에서 비밀리에 알아보면 승진에 탈락한 사람들의 반응은 보통 두 가지이다. 불만을 갖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이를 조사 후에 “김 부장은 전혀 불만 없이 활기차게 직원들을 이끌고 있습니다.”라고 보고하면, 회장님은“그래?”하고 말한다. 임원 승진의 2차 관문에 통과한 것이다.

그런데 더욱 이상한 것은 회장님은 김 부장과 같은 사람을 다시 남들이 다 싫어하는 한직이나 기피부서 예컨대 시리아 건설 현장 같은 곳으로 발령을 낸다는 점이다. 그리고 1년쯤 지나면 회장님은 다시 비서실장에게 묻는다. “거, 시리아로 간 김 부장은 요즘 어찌 지내? 비공개로 알아 봐.” 조사 후에 “김 부장은 현지에서 불만의 소리가 전혀 없으며, 직원들과 관계도 좋고 업무 성과도 좋습니다.” “그래, 그럼 다음 승진심사에 상무로 발령 내고 본사로 불러들여.” 3차 관문까지 통과되어 진정으로 회장님이 신임하는 임원이 되는 순간이다.

H그룹 회장이 직원들에게 현금을 맡겨보고, 승진에서 탈락시켜 보고, 기피 부서로 발령을 내 보는 것은 인재를 훈련시키고 단련해 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는 큰 일에도 충성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큰 일을 맡기기 전에 작은 일을 맡겨보고 어떻게 처리하는가를 본 것이다.

리크루트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청년들이 학교를 졸업하고 직장에 처음 들어가면 95%의 사람들은 실망하게 된다. 맡겨진 일이 자신의 기대와 크게 다르기 때문이다. 전략 기획실이나 해외 법인 등에 발령을 받아 머리를 쓰며 일을 할 것이라 기대한 것과 달리 현실은 너무 단순하거나 반복적인 일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복사를 해 오거나 상사가 고쳐준 대로 보고서를 수정하는 일을 하면서 “내가 이런 일을 하려고 대학을 나 온 줄 아느냐”고 불평들을 한다. 물론 이런 불평을 하는 사람들의 주장이 틀렸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거나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상사나 조직은 더 큰 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허드렛일을 시키면 기분 나빠한다. 학력이 높은 사람일수록 더욱 그렇다. 신입 여사원들 중에는 커피 심부름이나 복사 심부름 같은 일을 하고자 취직한 것은 아니라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커피 하나도 제대로 타려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인스턴트 커피도 어떻게 타는가에 따라 그 향이 다르다. 커피 잔에 뜨거운 물을 붓고 헹궈내서 컵의 온도를 따뜻하게 한 뒤, 물기를 깨끗이 털어내고 인스턴트 커피를 넣고 뜨거운 물을 조금만 넣어 완전히 잘 갠 뒤, 그 다음에 비로소 나머지 물을 채워 넣어야 향이 살아난다.”

<모든 일은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 어떤 일에서나 최선을 다하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
미국무장관을 지낸 콜린 파월의 말을 늘 상기할 필요가 있다.



동문페북에서 퍼온 글입니다.

그리고 이니셜을 넣긴 했지만 제가 특정그룹의 특정인물을 알리고자 올린 글은 아닙니다. 다만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다보니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대기업과 비교하면서 불만을 갖는 이들이 간혹 있어 안타까웠던 차에 일정 부분에선 공감되는 내용이 있어 퍼온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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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인생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까닭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 손석희 Diary 중에서 -

늦었다고 체념하는 삶보다 아직 할일이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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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도시락 편지

다음의 글은 일본 잡지책에서 읽은 내용을 옮긴 글입니다.
일본 동경에서 신간선으로 한 시간정도 떨어진 거리의 ‘지바“현에 사는 불우한 집안의 환경인 한 젊은이가 끝내 공업고등학교 과정의 배움을 중도에 포기하고 그 지방 배관공장(제일 고주파)회사 용접부에 취직되어 말단 공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늘 흉하게 기름 때 묻은 옷과 얼굴 모습을 혐오하며 끝 모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 가까운 동료도 없이 쓸쓸하게 홀로 일과 후에는 술만 마시며 우울증 같은 방탕한 나날을 보내던 어느 날, 우연히 카페에서 마음 착한 한 여자를 알게 되면서 서로 사랑하게 되었고 드디어 그녀와 결혼까지 하였습니다.
이 남자의 아내는 진정으로 그를 사랑했습니다. 그가 비록 보잘것없는 말단사원으로  공장에서 기름 때 묻은 일을 하고 있었지만, 아내는 유난히 정을 많이 쏟아주는 남편의 사람 됨됨이를 늘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아내의 도리를 다 하였습니다.
그런 착한 아내에게 늘 적은 월급과 찌든 작업복 차림으로 돌아 올 때마다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 돌아온 남편의 모습을 보니 유난히도 피로에 지친 모습이라 아내는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그래서 아내는 매일 아침 남편에게 정성어린 도시락을 싸주면서 편지를 써서 접어 가방에 함께 넣었습니다.
그 편지 첫 머리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나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아내로부터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같이 이렇게 쓰여 진 편지를 받은 남편은 처음 얼마간은 아내가 자신에게 용기를 주려고하는 편지려니 생각하고 그저 덤덤하게 고맙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아내의 편지는 그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도 아내에게 보답차원에서 무언가 남겨야 하겠기에 평소보다 두 시간 일찍 공장에 출근해서 미처 사람들의 손이 닿지 않는 어두운 창고를 청소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이른 시간을 선택했고, 직원들이 출근 전에 모든 일을 보이지 않게 다 끝마쳤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이런 사실을 자세히는 말하지 않았지만, 그 일로 인해 아내와 보이지 않는 기쁨이 자라났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많은 세월이 흘렀답니다.
그날 아침도 여전히 아내가 싸준 도시락에는 편지가 들어있었습니다.
그날 아침의 편지를 읽고 점심 도시락을 먹고 나니 사장실로부터 급히 오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한 것도 없는데 사장님이 왜 나를 부르는 것일까?'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서둘러 사장실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사장으로부터  뜻밖의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20년 전부터 자네를 지켜봐 왔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자네가 아니라면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묵묵히 일해 온 자네에게 온 마음으로 경의를 표하네."

"그렇지만 사장님! 전 그냥 제가 좋아서 한 일일뿐입니다."

"알았네. 지금 내가 좀 바쁜 약속이 있어 밖에 나가봐야하니 자네도 그냥 나가보게나."

그 다음 날 출근을 하니 그는 부장으로 승진해 있었습니다.
부장이 되어서도 공장 청소만큼은 변함없이 자신이 했습니다. 자식 둘의 알뜰한 아내가 된 부인이 하루는 편지 속에

“나는 당신이 정말 자랑스러워요”

20년을 변함없이 해준 아내의 이 말은 무력감과 열등감에 지쳐있는 남편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높이 세워놓은 힘이 되었습니다.
자칫 무시당하기 쉬운 무력함에 그토록 오랫동안 한 결 같이 따뜻한 시선만을 주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내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매일 적어준 도시락 편지는 진정한 마음속에서의 사랑이었습니다.
또한 아내가 해준 격려는 그에게 크나큰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토록 긴 시간을 오직 한 마음으로 기나긴 꿈을 꾸게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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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많아 은퇴할 때가 된 한 목수가 어느날 고용주에게 이제 일을 그만두고 남은 여생을 가족과 보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고용주가 말렸지만 목수는 그만두겠다고 했습니다.
고용주는 휼륭한 일꾼을 잃게 되어 무척 유감이라고 말하면서 마지막으로 집을 한 채 더 지어줄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목수는

"물론입니다."

라고 대답했지만 그의 마음은 이미 일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는 형편없는 일꾼들을 모으고 조잡한 자재를 사용하여 집을 지었습니다.
집이 완성되었을 때 고용주가 목수에게 현관 열쇠를 쥐어주면서

"이것은 당신의 집입니다.
오랫동안 당신이 저를 위해 일해 준 보답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충격적인 일입니다.
만일 목수가 자신의 집을 짓는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그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집을 지었을 것입니다.

"노자"는 "끝 조절을 처음과 같이 하면 실패하는 일이란 결코 없다" 고 말한 바 있습니다.

우리 속담에 "뒷간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다르다"는
말이 있듯이 처음과 끝이 똑 같아야 복이 오는 겁니다.

"시작이 반" 이라는 말도 있지만 "끝은 전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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