多数人的信神都是为了以后的归宿或是暂时的享受。对于不经任何对付的人来说,信神就是为了进天堂,就是为了得赏赐,并不是为了被成全或是为了尽到受造之物的本分。也就是说,多数信神的人并不是为了履行自己的职责或是来完成自己的本分,很少有人信神是为了活出有意义的人生,也没有人认为人既活着就当爱神,因为这本是天经地义的事,本是人的天职。这样,不同的人的追求目标虽然各有不同,但其追求的目的与存心都是相仿的,而且对于多数追求的人来说,他们崇拜的对象也都是大致相同的。历时几千年来,多少信徒死去,又有多少信徒死而复生,追求神的人也不止是一个两个,更不止是一千两千,然而他们这些人的追求多数都是为了个人的前途,或是为了以后的美好盼望,为基督尽忠的人却寥寥无几,不少的虔诚信徒仍是死于自己的网罗之中,得胜的人更是微不足道。至于人失败的原因或是得胜的秘诀至今仍是不明不白,那些“痴情”追求基督的人仍是不醒悟,他们不晓得这些奥秘的根源究竟是如何,因为他们根本就不知道。尽管他们的追求呕心沥血,但他们所走的路却是前人所走过的失败的路,并不是前人所走过的成功的路,这样,无论他们如何追求,他们所走出来的路不都是通向黑暗的吗?他们所得的不都是苦果吗?那些模仿以往那些成功之人的人到最终是福是祸都很难预测,更何况那些踩着失败之人的脚印追求的人呢?不更是失败有余吗?他们所走的路又有何价值呢?不都是空跑一趟吗?不管人的追求是失败或是成功,总之都是有原因的,并不是随便追求就能决定得失的。

각 사람마다 자신이 하나님을 믿는 생애에 하나님을 따르는 과정에서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앎과 진정한 이해와 진정한 인식이 있는가의 여부, 각 부류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태도가 무엇인지 참으로 아는가의 여부, 하나님이 너에게 한 일과 너의 모든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定義)를 참으로 이해하는가의 여부를 다시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너의 곁에서 너를 동반하고 너의 앞길의 방향을 인도하고 너의 운명을 주재하고 너의 필요를 공급하는 이 한 분의 하나님에 대해 너는 도대체 얼마나 이해하고 알고 있는가? 너는 그가 매일 너에게 무엇을 하는지 아는가? 그가 매 한 가지 일을 하는 원칙과 취지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떻게 너에게 공급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어떤 방식으로 너를 인도하는 것인지 아는가? 그가 너에게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이루려고 하는지 아는가? 너의 여러 가지 표현을 대하는 그의 태도를 아는가? 네가 그가 기뻐하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아는가? 그의 희로애락의 유래와 그 배후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그의 실질을 아는가? 너는 네가 믿는 이 한 분의 하나님이 도대체 어떤 하나님인지 아는가? 등등 이런 문제들은 네가 지금까지 알아보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 아닌가? 네가 하나님을 믿는 과정에서 하나님 말씀에 대한 자신의 진실한 체득과 경력(역주: 체험)으로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푼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을 받고서 하나님에 대해 진실한 순복(역주: 순종)과 헤아림이 생긴 적이 있는가? 너는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 중에서 사람의 패역과 사람의 사탄 본성을 인식하고서 하나님의 거룩함에 대해 조금의 이해라도 있었는가? 너는 하나님 말씀의 인도와 깨우침 하에 새로운 인생관이 생기기 시작했는가? 너는 너에 대한 하나님의 시련 속에서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과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와 구원을 느꼈는가?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에 대한 오해인지 모르고 어떻게 하나님에 대한 오해를 푸는지도 모른다면 너는 지금까지 하나님과 진정한 교제가 없고 지금까지 하나님을 알아본 적도 없다고 할 수 있으며 적어도 너는 전혀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네가 무엇이 하나님의 징계와 채찍질인지 모른다면 너는 틀림없이 무엇이 순복과 헤아림인지 모르고, 적어도 너는 하나님에 대해 진정한 순복과 헤아림이 없었을 것이다. 만약 네가 하나님의 형벌과 심판을 경력한 적이 없다면 너는 결코 무엇이 하나님의 거룩인지 모를 것이고 더욱이 무엇이 사람의 패역인지도 모를 것이다. 만약 네가 전혀 참되고 정확한 인생관이 없고 정확한 인생 목표가 없고 여전히 앞으로의 인생길에 대해 막막해 하고 방황하며 심지어 주저하며 나아가지 못했다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깨우침과 인도를 얻은 적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너는 지금까지 진정 하나님 말씀의 공급과 보급을 얻은 적이 없다. 만약 네가 아직 하나님의 시련을 겪지 못했다면 말할 필요도 없이 너는 틀림없이 하나님의 거스를 수 없음이 무엇인지를 모를 것이고 너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가 도대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할 것이며 더욱이 사람을 경영하고 구원하는 하나님의 사역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도 모를 것이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얼마나 오래 믿었든지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서 어떠한 경력과 터득도 없다면 그는 분명 구원받는 길에 들어서지 못했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그의 믿음에 분명 실제 내용이 없을 것이며 하나님에 대한 그의 인식도 분명 제로일 것이다. 말할 필요도 없이 그는 무엇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인지를 전혀 모른다.

"한국교회의 실패는 성서의 언어를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지 못한 데 기인한다"는, 청파교회 김기석 목사님의 한마디가 마음 속에 잠든 오랜 꿈을 깨웠다.  

성서의 언어를 날마다 일상의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은, 삶을 치열하게 산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날마다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고 이웃을 만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런 삶이, 성서의 언어를 이 땅에 살아있는 언어로 번역하는 번역작업이다. 

오늘 만난 친구, 오늘 만난 이웃과 나눈 말, 나의 행동 하나 하나를 돌아보며 성경 번역을 생각해 본다. 날마다 우리는, 성서의 언어를 얼마나 정확하게 자신의 일상의 언어로 번역하고 있을까?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요한복음의 말씀은, 오늘 성경 번역자에게, 새로운 도전을 주는 말씀이다. ^^*

Post has attachment
John Wesley's Life at the Oxford University
옥스포드 대학에서 요한 웨슬리의 생활 단편

For several years I was Moderator in the disputations which were held six times a week at Lincoln College, in Oxford. I could not avoid acquiring hereby some degree of expertness in arguing; and especially in discerning and pointing out well-covered and plausible fallacies. I have since found abundant reason to praise God for giving me this honest art. By this, when men have hedged me in by what they called demonstrations, I have been many times able to dash them in pieces; in spite of all its covers, to touch the very point where the fallacy lay; and it flew open in a moment.
- in the "The Works of the Rev. John Wesley : in ten volumes (1826)" by John Wesley

웨슬리 시대에, 공개 토론회는 대학 생활에서 중요한 일상이었다. 요한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일주일에 여섯 번 개최되는 공개 토론회의 사회자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끝장토론의 백지영 사회자나, 100분 토론의 손석희 사회자 정도의 역할을 했다고 보면 된다. 당시, 사회자로서 웨슬리의 역할은, 토론의 중재와 조정까지도 포함하는 역할이었다. 공개 토론회는, 옥스포드 대학의 중요한 훈련과정이었으니, 대학 교수로서 요한 웨슬리의 역할은 학생들의 훈련을 상당부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요한 웨슬리는, 옥스포드 대학에서의 이 때 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몇 년 동안 계속해서 사회를 맡아보면서, 토론에 필요한 전문성을 습득할 수 있었고, 그럴듯하게 포장된 틀린 논점들까지도 알아보고 지적하는 안목을 갖추게 되었다"

요한 웨슬리는, 또한, 대학에서의 이런 경험이, 하나님께서 주신 귀중한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경험을 통해 갖춘 그런 안목과 통찰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여러 상황 속에서도, 틀린 점들을 정확하게 알아보고, 한 순간에 드러낼 수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아무리 그럴 듯한 포장을 씌워서 감추어 놓았어도, 틀린 점들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릴 수 있었다고 한다. 

또한, 그와 같은 시기에, 웨슬리가 속했던 "신성 클럽"은, "성경 벌레(Bible Moths)"라고도 불리웠으니, "옥스포드 공개 토론회"는, 웨슬리의 성경 읽기가 이 때부터 얼마나 철저했을지를 짐작하게 해 주는 "또 하나의 일상"이라고 할 수 있다. ^^*

누가복음에서 만난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축복한다. 나이 어린 마리아를 축복하는 나이 많은 엘리사벳, 엘리사벳은 어떻게 이런 멋있는 어른이 되었을까?

How happy you are 
to believe that the Lord's message 
to you will come true!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질 줄 믿은 여자는 행복합니다.
Luke 누가복음 1:45

"축복하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있냐"고? 하지만, "진심으로" 남을 축복할 줄 아는 어른이 되기란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알아보는 눈을 떠야 한다. 온갖 약점, 연약함, 아픔을 다 가지고 있는 사람을 만나서, "그 상처 투성이 속에서 좋은 점"을 알아보아야 한다. 찾아 내야 한다. 그래야, 그 연약함, 그 아픔, 그 상처가 얼마나 귀한 지 깨달을 수 있고, 그래야 그 좋은 점이 얼마나 귀한 지 알아 볼 수 있고, 그제야, 그의 삶을, 아니 그를 "진심으로" 축복할 수 있으리라.

단점을 보고 조언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남의 좋은 점을 보고 축복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나이가 하나 둘 늘어가면서, 축복하는 시간이 하나 둘 늘어가면 좋겠다. 누가복음에서 만나는 엘리사벳은 이렇게 멋진 어른이다. ^^*

“If I don't practice one day, I know it;
two days, the critics know it; 
three days, the public knows it.”
-Jascha Heifetz

You must train yourself continually to live a life that shows reverence to God.
경건한 생활에 힘을 기울이는 훈련을 하십시오.
-1Thimoty 디모데전서 4:7

하루 연습을 거르면 내가 스스로 알고
이틀을 거르면 남이 알고
사흘을 거르면 모두가 안다.

야샤 하이페츠가 생각이 난 것은, 웰링턴에서 만난 발레리나 덕분이다. 그는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하였다. 그가 가르친 제자들이, 유럽과 세계 무대에서 정상급 활동을 하고 있으니, 자신을 전문가라고 소개하는 데에 뭐라고 할 말은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를 물어 보았다. "전문가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뜻이 무엇인가요?" 그는 바이올린 연주가 야샤 하이페츠의 말을 인용하면서, "하루도 연습을 쉬지 않는다는 뜻이지요?" 하고 대답해 주었다. 

디모데전서에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경건한 생활에 힘을 기울이는 훈련을 하라"고 권면한다. 2000년 전 청년 디모데에게 주었던 말씀과 1987년 12월 10일 세상을 떠난 야샤 하이페츠의 이야기를 함께 읽으니, 산을 오르려고 운동화 끈을 다시 단단히 묶는 기분이 든다. 오늘 하루 얼마나 기도하며 살았는가! ^^*
Wait while more posts are being load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