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회고록 P398 계엄군의 출신지
"광주지역의 향토사단인 31사단에는 호남지역 출신들이 많았다. 또한 광주에 맨 처음 투입된 7공수여단도 전북 금마에 주동하고 있어서 부대원 중 40퍼센트가 호남 출신이었다. 순차적으로 광주에 증파된 공수부대들을 작전통제한 소준열 전교사령관과 정웅 31사단장도 호남이 고향이다. 소준열 장군은 전남 구례, 정웅 장군은 전남 순천 출신이다. 계엄사령부 작전참모부장으로서 광주 작전을 총괄한 김재명 장군도 바로 광주와 이웃한 전남 강진 출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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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 기준으로 공수부대는 7개 여단이 있었고 각 여단에는 4개 대대가 있었다. 각 대대는 3개 지역대로 구성되어 있고 각 지역대는 5개 중대로 구성되어 있다. 각 중대는 10여명의 대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여단이 위치한 장소는 1공수 김포, 3공수 송파, 5공수 부평, 7공수 익산, 9공수 부천, 11공수 화천, 13공수 포천이다. 광주사태에 투입된 공수부대는 3, 7 그리고 11공수다.
5월17일 밤11시30분 육본은 최초의 출동 명령을 내렸다. 익산의 공수 7여단에 대한 것이었다. 7여단의 32대대는 대전 충남대로, 31대대는 전주의 전북대로, 33 및 35대대는 광주의 전남대로 진주하라는 명령이었다. 33, 35대대는 18일 새벽 3시10분에 전남대에 도착했다. 대학생들과 최초로 충돌이 시작된 계엄군은 이 공수 7여단이다.

공수부대의 광주사태 - 조갑제
광주에 투입됐던 공수 7여단 35대 대장 김일옥 중령은 대구사람, 33대대장 권성만 중령은 전주사람이었다. 35 대대 3중대장 朴炳洙 대위는 전북 김제사람이었다. 지금은 부평에서 한의사로 일하고 있는 朴씨(33세) 는 『5월 17일 저녁에 트럭으로 여단본부를 떠났는데, 대학에 진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둑판과 배구공을 가지고 갔다. 대학에 진주한다는 것을 놀러가는일 정도로 생각했다』 고 말했다. 朴씨는 또 『우리 부대는 주둔지가 전북이라서 그런지 전라도 출신이 가장 많았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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